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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리앙의 서울일기 ⑦ 돈 사용법

바람아님 2016. 4. 23. 00:40
[중앙일보] 입력 2016.04.23 00:13

돈은 충실한 하인이자
못된 주인이란 점 명심하자


어제 나는 한 사업가를 만났다. 그분은 수많은 질문공세를 편 끝에 이렇게 물었다. “한국에는 무엇 하러 왔나요?” 나는 참선수행과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해서 마음의 평화를 얻고, 보다 온화한 인간이 되고자 노력 중이라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러자 그분은 내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말했다. “차라리 컴퓨터나 열심히 붙잡고 앉아 돈 벌 궁리를 하는 게 낫겠습니다.”

역시 돈이야말로 골치 아픈 문제다. 금전에 얽힌 온갖 부정과 불평등을 해소하고, 모두 더불어 부유할 수 있다면 세상은 얼마나 편안할까. 오늘내일 전전긍긍하며 살다가 결국 빚더미를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다니 말이 되는가. 사람의 목숨은 그 자체가 값을 따질 수 없는 보배다.

당신은 누구냐는 질문에 에픽테토스는 항상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자유를 찾아가는 노예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목적은 어쩌면 세상의 집착에서 벗어나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모든 행복과 불행이 우리가 무엇에 애착을 갖고 사느냐의 문제로 모아진다는 스피노자의 판단은 옳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기 호주머니와 은행 잔고를 채울 생각만 하는 사람이 종종 삶의 핵심을 놓치고 마는 이유다. 정복하고, 축적하고, 소유함으로써 행복해진다는 생각은 큰 오산이다. 반대로 가진 것을 내어주고, 덜어낼수록 사람은 행복해진다. 이기심과 욕심을 비워내는 만큼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치열한 세상에서 어떻게 매 순간 나를 내려놓는가. 시시각각 변하는 각박한 세상에서 어떻게 마냥 선량하고 너그러울 수 있겠는가. 마음을 비운다고 해서 경계심과 조심성, 현실감각에 아주 등을 돌리라는 뜻은 아니다. 우리를 결코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없는 물욕에 조금만 덜 관심을 쏟는 것에서 시작해보는 건 어떤가. 내 친구인 스님 한 분은 상가를 지날 때마다 이런 말을 주문처럼 외운다. “이 모든 것은 내게 필요치 않아.” 하루를 시작하는 최선책으로, 내가 오늘 누군가에게 어떤 좋은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라는 니체의 권유 역시 같은 맥락에서 중요한 가르침이다. 그 가르침을 돈 사용법에 살짝 적용해본다면 말이다.

거창한 제스처도 필요 없고, 과한 희생을 하지 않아도 좋다. 지금 당장 자기 분에 맞는 베풂을 실천하는 것으로 족하다. 한국으로 떠나오기 전에 나는 소중히 가꿔온 나의 서가(書架)와 작별해야만 했다. 고심 끝에 내가 사는 도시의 교도소에 전화를 걸어 책을 기증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몇 시간 후 거대한 트럭이 도착했고 내 자식 같은 책들을 박스째 실어갔다. 그날 저녁 나는 삶의 진리 하나가 또렷해지는 것을 실감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 안에 더 큰 기쁨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교도소의 어떤 재소자가 세네카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쇼펜하우어의 책장 어딘가를 손으로 더듬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지금도 내 입가엔 미소가 절로 스민다.

갈증만을 부추길 뿐인 헛된 것들일랑 더 이상 쌓아놓지 말자. 타인이라는 존재에 최선을 다해 자신을 열어 놓을 때, 우리는 무조건적인 기쁨이 어떤 것인지 실감할 수 있다. 돈을 모으는 것보다 쓰는 것이 더 어렵다고? 프랑스의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다음 글에서 돈 사용법의 힌트를 구해보는 것은 어떨까.

“돈을 과대평가하지도 과소평가하지도 말라. 다만 돈이란 충실한 하인이자 못된 주인이라는 점만은 명심하자.”

졸리앙 스위스 철학자 / 번역 성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