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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의 종횡무진 인문학] 망설임 없이 결정했던 베트남戰 파병… 우리는 무엇을 놓쳤을까

바람아님 2016. 4. 30. 08:14

(출처-조선일보 2016.04.30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

장세진 '슬픈 아시아'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 사진1945년 8월 15일, 일왕(日王) 히로히토는 '대동아전쟁 종결 조서(詔書)'를 발표했다. 
이 문서에는 일본이 어떤 잘못을 저질러서 항복하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적혀 있지 않다. 
오히려 핵폭탄을 떨어뜨릴 만큼 강력한 미국을 상대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전쟁을 그만둔다는 
뉘앙스다.

당시 중국 상하이에서 이 방송을 듣던 일본 작가 홋타 요시에(堀田善衛·1918 ~1998)는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그게 무슨 인사야. 네가 할 말이 그것뿐이냐. 
그것으로 일이 끝난다고 생각하느냐"고 화를 냈다고 술회했다.

패전 후, 소련을 비롯해 전 세계를 여행하던 홋타는 터키에서 한 미국 청년을 만났다. 
미국 청년은 '언제나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호소하는 소련 정부의 전형적 화법'을 비웃었다. 
그러자 홋타는 이렇게 반문했다. 
"나는 용무차 소련에 다녀왔으며 소련에 빚진 것도 받을 것도 없지만, 그 나라는 거대한 후진국이 옳다. 
하지만 그런 나라의 인민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들이 미래에 대해 말한다는 이유로 그들을 경멸해야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슬픈 아시아 책 사진베트남 전쟁 당시, 홋타는 이 전쟁을 반대하는 일본 지식인 운동 '베헤이렌(베트남에 평화를! 시민연합)'을 주도했다. 
일본은 한국과 동남아시아를 폐허로 만들고 전후 자국(自國)만 다시 번영을 누렸다는 비판을 받지만, 
일본에는 홋타 같은 사람도 있었다. 
전후 한국의 냉전 문화를 연구하는 저자 장세진은 '슬픈 아시아-한국 지식인들의 아시아 기행
(1945~1966)'에서 이렇게 되묻는다. 
"전후 한국에는 홋타 요시에도, 아시아에 대한 침략을 반대한 베헤이렌도 존재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베트남 파병 당시 한국은 그야말로 '관민(官民) 합일'의, 전 국민적인, 
아찔한 '도취'와 '축제'의 황홀경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이 책은 좌우 이념의 옳고 그름을 논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자였던 한국이 냉전 질서 속에서 베트남전 파병을 결정하는 과정을 
면밀하게 추적한다. 
전 지구적 이념 대립 속에서 한국인이 무엇을 놓쳤는지 돌아보게 하는 '거울' 같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