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중심 사회운동이 한국사회 바꿀 것”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 출간한 정수복 박사
(출처-조선일보 2007.08.02 / 문화 A25 면/ 이한우기자)
2007년 한국인을 문화이론적 시각에서 종횡으로
‘단층촬영’한 문제작이 출간됐다.
저자는 프랑스에서 사회학박사를 받고 1989년 귀국해 환경운동연합 등에서
시민운동을 하다가 다시 프랑스로 가서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초청연구원으로
강의를 하고 있는 정수복 박사(53).
1922년 이광수가 ‘민족개조론’을 낸 이후 한국인론, 한국사회론은 늘 격렬한 논쟁을
촉발하는 강한 인화성을 보여왔다는
점에서 정수복 박사의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생각의 나무)이 어떤 수준과
성격의 논쟁을 유발하게 될지도 관심거리다.
책 출간에 맞춰 잠시 귀국한 정수복 박사는
“한국에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근대성을 접목하기 위해 그동안 공부하고
실천했는데 오히려 5년 가까이 프랑스에 체류하다 보니 그전에는 몰랐던
우리 사회 혹은 한국 사람에 대해 눈을 뜨게 돼 책 출간으로까지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의 고민은 ‘민주화 이후 한국’에서 시작됐다.
소위 ‘87년 체제’의 등장과 함께 민주화가 진행됐고 그 자신도 시민운동에 뛰어들어
그 한복판에 있었다.
짧지만 방송의 대담프로와 시사프로도 진행했었다.
그러나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벽에 맞닥뜨렸다고 느낀 그는 2002년 다시
프랑스행을 결심했다.
“근대국가를 세우고 전쟁,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 등의 단계를 거쳐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에게는 여전히 바뀌지 않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먼저 현세적 물질주의, 감정우선주의, 가족주의, 연고주의, 권위주의,
갈등회피주의라는 6가지 근본적 문법으로 정리했습니다.
이어 파생적 문법으로는 감상적 민족주의, 국가중심주의, 속도지상주의,
근거없는 낙관주의, 수단방법중심주의, 이중규범주의 6가지에 주목했습니다.”
이들 6가지 근본적 문법과 6가지 파생적 문법은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게 아니라
서로 뒤엉키면서 한국인의 자화상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 정박사의 진단이다.
좌파건 우파건 한국인이라면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전통세대 못지않은 좌파들의 강한 위계질서가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정 박사는 “예전에는 사회적 이상을 통해 각종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착각이었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된 원인, 즉 종교의 문제를 파고들어야 해결방향도 잡을 수 있습니다”면서
특히 한국사회는 무교(巫敎)와 유교(儒敎)의 결합체라고 분석했다.
그의 이 같은 문화적 문법론은 북한사회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사회주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완강하게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스탈린주의 모델 밑에 가려져 있는
‘무교-유교 결합체’가 그대로 지속되고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가 12개로 정리한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은 일견 부정적으로 읽힌다. 그도 이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 박사는 긍정 부정의 문제보다 그런 문법들에 담겨 있는 ‘억압성’이 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그는 개인의 해방, 개인주의의 정립을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처방으로 제시한다.
“개인주의=자기만의 이익 추구=무질서=무정부주의=혼란=난장판의 등식이 자리잡고 있는 한국적 상황에서
개인주의가 갖는 긍정적 의미와 해방적 에너지는 지속적으로 무시되고 억압당했습니다.”
결국 개인주의 가치관으로 무장한 ‘진정한 개인’의 출현이 관건인데 이게 쉽지 않다.
“지금의 10대나 20대들이 그런 싹을 보여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소비하는 주체로서의 개인’을 넘어서야 합니다.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 다릅니다. 젊은 세대에게 기대와 불안을 함께 갖고 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정 박사는 ‘문화적 문법의 전환’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가정 사회 등에서 지속적인 노력을 펼쳐야 한다.
정치중심의 사회운동은 문화중심의 사회운동으로 바뀌어야 하고 개인의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
가족관계의 민주화, 교실의 민주화, 대학과 인문사회과학의 역할 강화, 문학과 예술의 역할 강화,
종교개혁과 종교단체의 민주화 등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를 깊이 파고든 만큼 그 해결의 벽 또한 높아보인다.
(이한우기자 hw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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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문화적 문법' 우리의 의식은 아직 상투를 틀고 있다
(출처-한국일보2007.08.03 이왕구기자)
정수복 지음 / 생각의 나무 발행ㆍ600쪽ㆍ1만8,000원유교 중심의 부정적 전근대 유산 '떨어져 보기' 통해 비판적 해석 시도
사회학자 정수복(53)씨. 1989년 프랑스에서 사회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2000년대 초까지 강의와 시민운동,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 활동했던
그는 2002년 서울생활을 접고 다시 프랑스로 건너가 사회과학고등연구원의
연구자로 5년간 한국인과 한국사회를 탐구했다.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은 그가 한국사회에 대해 의도적인 ‘떨어져보기’를 시도하며 끌어낸 한국인론이다.
한국인의 내면세계에 대한 그의 문제의식은 ‘한국의 근대는 미완이고 절름발이’라는 선언에서 명쾌하게 드러난다.
그는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 한국이 외형적으로는 근대의 꼴을 이룩했지만,
그 시공간을 살아가는 한국인들은 전근대의 정신적 유산을 떨치지 못했다고 본다.
그가 프랑스에 머무는 동안 발생한 황우석 사태가 상징적이다.
이때 한국 지식인들은 “개인이나 공동체나 너무 까발리면 생존하기 어렵다.
큰 공적을 이룬 분들은 공헌도 크지만 과정에서 오류도 있기 마련”이라며 희박한 윤리의식과 도덕불감증을 날것으로 보여줬다.
또한 경제위기 이후 시나브로 확산되는 박정희 전두환 이승만 등 전근대적 지도자들에 대한 대중들의 지지 역시
그의 확신을 굳혔다.
그는 ‘문화적 문법(cultural grammar)’이란 개념을 동원해 한국인의 내면세계를 비판적으로 읽는다.
문화적 문법이란 구성원 행위의 밑바닥을 가로지르는 마음의 습관, 의식구조 등을 아우르는 개념.
이는 다시 한국인들이 오랜 세월 동안 내면화한 근본적 문법과 20세기 들어와 형성된 파생적 문법으로 나뉜다.
<각주>
내면화 (內面化) - [명사] 정신적ㆍ심리적으로 깊이 마음속에 자리 잡힘. 또는 그렇게 되게 함. (국어사전) |
내면화 (內面化) - 타인의 신념, 가치관 등을 자신의 사고에 병합시켜 자신의 것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재구성한다는 것은 외부에서 전달되는 가치나 지식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고 그것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저장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지식이 내면화되지 않으면 단순한 암기에 불과하여 상황의 변화에 이를 능동적으로 활용할 수 없다.
[네이버 지식백과] 내면화 (용어해설) |
근본적 문법은 현세적 물질주의, 감정우선주의, 가족주의, 연고주의, 권위주의, 갈등회피주의이고 파생적 문법은 감상적 민족주의, 국가중심주의, 속도지상주의, 근거없는 낙관주의, 수단방법 중심주의, 이중규범 중심주의다.
이 문법들의 기원은 유교, 도교, 불교 등 전통종교와 사상인데 지은이는 특히 유교의 부정적유산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한다.
가령 유교의 권위주의적 성격 때문에 한국인들은 불합리한 문제가 발생해도 문제 제기를 못했고,
이는 비판과 토론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는 ‘자율적이고 근대적인 개인’들의 출현을 봉쇄했다는 것이다.
좌파건 우파이건 남한이건 북한이건 이 유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운동권이나 시민단체 내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강한 위계질서나, 사회주의를 내세웠지만 봉건적 수직적 질서를
강화했던 북한사회가 이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한국사회에서 이런 낡은 문화적 문법을 해체할 수 있는 주역으로 청년층과 여성들을 주목한다.
2030이라 불리는 청년세대는 나이, 직위, 영향력으로 유지되던 수직적 위계질서를 인격존중, 설득,
격려로 유지되는 수평적관계로 전환시키고 있으며,
오랫동안 남성지배적 문법에서 배제돼 있었던 여성들도 기존의 문법을 비판적이고
상대적으로 해석하며 변화를 이끌어가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세계를 낡은 문화적 문법으로 파악해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기회로 삼았으면 하는
희망에서 이 책을 썼다”며
“한국사회에 독자성과 존엄성을 지닌 개인을
그대로 인정하는 개인주의가 고양될 때 낡은 문법들이 해체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