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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누가 배신자인가?

바람아님 2016. 4. 27. 00:17
[중앙일보] 입력 2016.04.26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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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서울대 교수·철학과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는 인간적인 도리와 공적인 도리 사이의 갈등을 극적으로 묘사한다. 테베의 왕 크레온은 조카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짐승의 먹이가 되도록 들판에 버려두라고 명령한다. 폴리네이케스의 동생인 안티고네는 이 명령을 따를 수 없어 왕의 명령을 어기고 오빠의 시신을 수습해 매장한다. 결국 안티고네는 지하감옥에 수감되고,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안티고네』는 삶의 부조리한 비극적 측면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문학적 감동으로 고전으로 자리 잡았고, 정도는 다를지 몰라도 의무 사이의 갈등을 겪는 우리의 일상과 맞닿아 지금까지도 울림을 준다. 가족과 약속한 여행과 긴급한 회사의 호출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것과 같은 도리의 갈등은 성인이 되어 가며 더욱 빈번해진다. 소속한 집단의 수가 점차 많아지기 때문이다.

집단은 개인에게 정서적·경제적·사회적 보호망을 제공하지만 세상 일이 그렇듯이 공짜는 없다. 보호의 대가로 집단의 규범을 지킬 것을 약속해야 한다. 그래서 (배신이라는 표현이 과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갈등 상황에서의 선택은 한쪽과의 약속을 어겨 신뢰를 깨는 배신을 동반한다.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은 크고 작은 배신들을 관리하는 기술을 배워 가는 것이 아닐까?

가치의 갈등이 사적인 이해를 도모하는 집단과 공적인 공동체 사이에서 발생하기도 한다.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개인의 욕심에 매몰되지 않고 타인을 배려하면서 갈등 상황에서 의사결정의 무게추가 공적인 영역으로 이동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의 성장도 다를 바 없다. 왕권과 신권의 통제에서 벗어나 개인의 인권이 강조되기 시작한 계몽주의 시대에 시민들은 각자도생을 목표로 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이리” 상태의 나락에 빠지지 않고 공동체의 규범을 만들며 공생의 시민사회를 구성하고자 노력했다. 사적인 이익 집단과 공공의 가치의 대립에서 개인의 이해 너머 공생의 가치에 무게추를 두는 원심적 사회는 응집력과 활력을 얻어 성숙한 시민사회로 발전했다. 반면에 권력이 공공의 가치를 대변하지 못하고 사적인 이익집단에 의해 좌지우지된 구심적 사회는 후진의 늪에서 허덕거렸다.

지난 총선은 우리 국민의 시민적 성숙도를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국회의원은 국가 최상위의 공동체적 규범인 법을 만드는 소임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아 활력 있는 원심적 사회의 지향점을 제시하는 과제를 수행할 것을 국민과 약속한 사람들이다. 사적인 집단의 권력욕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구태적 정치행태는 국민의 수준을 얕잡아 보는 것일 뿐만 아니라 공공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으로 국민과의 약속에 대한 배신이다. 국민을 배신하고 사적인 이해를 도모하는 행위에 대해 국민은 총선을 통해 준엄한 심판을 내렸다.

생업에 열중하면서도 원심적인 공동체적 가치에 대한 통찰을 갖춘 국민을 갖고 있는 한국의 미래는 밝다. 나머지는 정치문화가 국민의 의식을 따라오는가에 달렸고, 총선을 기화로 간격을 해소하기 위한 처방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권력이 집중돼 있는 대통령중심제에 대한 수정이 거론되고 있고, 화합과 소통을 위한 대통령의 노력이 또 다시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직 자체가 권력화돼 있는 한 정계는 공공의 이익보다는 개인의 권력을 지향하는 세력들의 싸움터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국회의원의 특혜, 특권의 문제는 업무량에 대한 적절한 보상인가 하는 단순한 경제 정의의 문제가 아니다. 특혜와 특권을 거두고 권력 남용을 방지하는 체계를 정비하는 것은 개인적 권력과 이해에 앞서 공동체적 가치를 생각하는 성숙한 시민이 정치에 진출해 원심적 사회를 구성하는 환경을 마련하기 위한 조건이다.

MIT의 정치경제학자 애스모글루는 결정적 분기점에 서 있는 사회에서 정치권력이 사회의 요구에 대응하지 못한 채 자신의 권력 유지에 집착할 때 경제의 실패가 따르고 결국 국가가 실패한다는 것을 과거의 수많은 사례를 통해 경고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결정적 분기점에 서 있다. 권력집단에 대한 의무에 앞서 공동체에 대한 의무가 지배하는 정치문화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이유다.

김기현 서울대 교수·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