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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민란의 마무리

바람아님 2016. 4. 17. 00:17
[중앙일보] 입력 2016.04.15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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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소설가


‘안철수 현상’은 본질적으로 민란이다. 안철수 의원은 기존 정치에 반기를 들었고 국민의당을 이끌면서 양당 구도를 깨뜨리려 시도했다. 정치 현실에 절망한 시민들이 그를 따랐다.

국민의당이 예상보다 많은 의석을 얻으면서, 그가 이끈 민란은 드디어 근거를 마련했다. 이제 그는 민란을 마무리할 길을 찾아야 한다.

지금 상황은 『삼국연의』의 ‘삼국정립’과 비슷하다. 안 의원은 강대한 위(魏)와 오(吳)의 틈바구니에서 작은 촉한(蜀漢)을 세운 셈이다. 그러나 촉한을 세운 유비와 국민의당을 세운 안 의원은 중요한 점에서 다르다. 안 의원이 하는 전쟁은 정책의 대결이다. 실제 전쟁과 달리 정책의 대결에선 작은 정당의 지도자도 좋은 정책들로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

국민의당이 결정표(casting vote)를 지녔으므로 안 의원은 입법을 주도하면서 세력을 늘릴 수 있다. 중도좌파인 안 의원으로선 오른쪽으로 향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리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충실히 따르는 것은 집권에 유리할 뿐 아니라 민란의 성격에도 맞는다. 민란에 참가한 사람들은 혁명가들이 아니다. 체제를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개선하려는 것이다. 새누리당에 실망해 국민의당을 지지한 시민들은 특히 그렇다.

근자에 새누리당은 지지자들의 기대를 거듭 저버렸다. 공천 과정의 추태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민주화’라는 사회주의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실제로 집행했다. 그것이 재앙임이 드러나도 공식적으로 철회하지 않았다. 당연히 경제는 큰 혼란과 침체를 겪었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아예 ‘사회적 경제’를 내세웠다. 이번 선거에서 김무성 대표는 노동개혁을 반대한다면서 노조원들에게 표를 구걸했다.

새누리당이 자신의 정체성을 잊으면서 우파 이념은 빈 땅이 되었다. 이런 이념적 묵정밭에 시장경제에 맞는 정책들을 심어 가꾸면 안 의원은 단숨에 보수 시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반면에 왼쪽은 움직일 여지가 작다. 더불어민주당이 자리 잡았고, 어차피 우리 사회의 구성 원리를 거스르는 정책들엔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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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에서 안 의원이 본받을 사람은 영국의 블레어 총리다. 그는 ‘제3의 길’이란 구호를 내걸고 선거에 나섰다. 집권하자, 그는 바로 시장경제의 원리에 충실한 정책들을 폈다. “노동당이 다 훔쳐가서, 우리 정책이라고 내놓을 것이 없다”고 보수당 의원들이 불평했을 정도다. 그런 친시장 정책들은 경제를 활기차게 만들었고 덕분에 노동당은 오래 집권했다. 독일의 슈뢰더 총리와 한때 브라질을 발전시켰다고 평가받은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도 같은 길을 걸었다.

집권한 뒤 친시장 정책을 편 좌파 지도자들과 달리 안 의원은 미리 펴서 시민들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안 의원에겐 다행히도 새누리당은 경제를 개혁할 의지를 잃었다.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민중주의적 공약들을 서슴없이 내놓았다. 특히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이 부를 문제들을 알리는 대신 더민주를 따라 대폭 인상을 공약했다. 이미 자영업자들은 일손을 줄이고 아파트마다 경비원을 줄이는데, 그런 조치가 부를 실업은 외면했다.

어느 사회에서나 경제 개혁의 핵심은 노동시장의 유연화다. 우리 사회에선 특히 그러하니, ‘귀족노조’들의 행태는 목불인견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한국노총에 매달리고 더민주는 민주노총의 볼모 신세다.

안 의원이나 국민의당은 노조에 진 빚이 없다. 안 의원이 노동시장을 과감히 개혁하는 법을 마련한다면, 그는 자신의 지도력을 시민들에게 선명하게 각인시킬 것이다.

안 의원이 이끈 민란은 호남의 지지 덕분에 성공했다. 여기서 새로운 가능성이 나온다. 친시장 정책들을 펴는 데 성공하면, 그는 호남을 묶은 이념적 주문(呪文)을 풀 수 있다. 원래 호남은 우파의 보루였다. 대한민국이 세워질 때 건국 이념을 떠받친 정당은 김성수·송진우·김병로 같은 호남 우파 지도자들이 이끈 한국민주당이었다. 시장경제의 우수성이 증명된 지금, 호남이 좌파 이념에 계속 매일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 이념적 주문을 푼다면, 실은 풀려고 노력하기만 하더라도 안 의원은 깊은 지역적 분열을 치유하는 단서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 과업은 파천황(破天荒)의 상상력을 요구한다. 끈질긴 ‘야권 통합’의 유혹을 물리치고 응집력 약한 정당을 이끌면서, 누구도 엄두 내지 못한 길을 가야 한다. 시민들에게 직접 호소해서 지지를 얻고 그 기운으로 국민의당을 힘차게 이끌어야 비로소 가능하다. 고비를 맞을 때마다 안 의원이 지지자들에게 외쳐야 할 말은 프랑스 혁명을 이끌면서 당통이 외친 구호다. “대담함, 거듭 대담함, 항상 대담함!”

복거일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