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0.04.07 김기철 기자)
서양최고 古典 '일리아스' 해설서 펴낸 강대진 박사
"트로이 전쟁은 배경일 뿐 이 서사시의 주제는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아킬레우스의 분노"
"대학에서 강의할 때 '일리아스'의 독후감을 받아보면 트로이의 목마가 인상적이었다고 쓴 내용이 나와요.
'일리아스'는 트로이가 함락되기 전까지 다루기 때문에 트로이의 목마가 나오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서양고전학자 강대진(49) 박사는 "우리 사회의 그리스·로마 고전에 대한 이해가 초등학교 3학년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했다.
서양고전학자 강대진(49) 박사는 "우리 사회의 그리스·로마 고전에 대한 이해가 초등학교 3학년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했다.
아이들은 '만화 그리스·로마 신화'로, 어른들은 할리우드 영화 '트로이'로 '일리아스'를 이해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강 박사는 "영화와 만화는 등장인물의 사랑·우정·용기 같은 표피적인 얘기만 담을 뿐,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인간의 대응을 다룬 이 작품의 근원적인 질문을 읽어내기 어렵다"고 말한다.
트로이 전쟁을 그린 '일리아스'는 서양문화의 뿌리라고 할 만큼 서구인의 정신사에 미친 영향이 압도적이다.
트로이 전쟁을 그린 '일리아스'는 서양문화의 뿌리라고 할 만큼 서구인의 정신사에 미친 영향이 압도적이다.
국내에서는 천병희 단국대 명예교수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희랍어 원전에서 우리말로 옮겼다.
하지만 첫 페이지부터 나오는 수많은 인명과 전투장면에 질리게 된다.
지난 2001년 서울대 고전학협동과정에서 '일리아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강대진 박사가 최근 펴낸
'일리아스-영웅들의 전장에서 싹튼 운명의 서사시'(그린비출판사)는 난해한 '일리아스'에 대한 친절한 길잡이가 될 만하다.
강대진 박사는“고전은 재미있는 작품인데, 그 재미를 끌어내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지루하다는 악평을 남긴다”고 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일리아스-영웅들의 전장에서 싹튼 운명의 서사시 (그린비출판사) (우측 사진) |
―왜 우리가 호메로스를 읽어야 하는가.
"단테의 '신곡(神曲)'에는 단테가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저승에 가는 이야기가 나온다.
"단테의 '신곡(神曲)'에는 단테가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저승에 가는 이야기가 나온다.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아이네이아스'란 작품에서 영웅이 저승 가는 이야기를 썼기 때문이다.
'아이네이아스'는 '오뒷세이아'의 주인공인 오디세우스가 저승 가는 이야기를 모태로 삼았다.
결국 거슬러 올라가면 호메로스에 닿는 것이다.
서구의 후대 명작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읽어야 한다."
―이 책에서는 트로이 전쟁은 '일리아스'의 배경일 뿐, 이 서사시의 주제는 아킬레우스의 분노라고 설명한다.
"아킬레우스의 분노 밑바닥에는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깔려 있다.
―이 책에서는 트로이 전쟁은 '일리아스'의 배경일 뿐, 이 서사시의 주제는 아킬레우스의 분노라고 설명한다.
"아킬레우스의 분노 밑바닥에는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깔려 있다.
자기는 일찍 죽어야 하기 때문에 그 대가로 명예를 원했는데, 아가멤논이 그 명예마저 빼앗아가니까 분노하는 것이다.
또 아킬레우스의 분노에는 사회에서 유능한 자(아킬레우스)가 자기보다 열등한 자(아가멤논)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사회적 지위의 문제가 깔려 있다."
―현대사회에서도 그런 문제는 늘 일어난다. 아킬레우스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아킬레우스는 '일리아스' 막바지에서 자신을 모욕하고 전리품을 빼앗았던 아가멤논의 위신을 도리어 높여주면서
―현대사회에서도 그런 문제는 늘 일어난다. 아킬레우스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아킬레우스는 '일리아스' 막바지에서 자신을 모욕하고 전리품을 빼앗았던 아가멤논의 위신을 도리어 높여주면서
화해를 시도한다. 지도자로서의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다."
―당신은 '일리아스'의 이야기 구조가 글쓰기의 모범을 보여준다고도 했다.
"오늘날 대작(大作) 영화에 쓰이는 이야기 기법들이 '일리아스'에 이미 다 나와 있다.
―당신은 '일리아스'의 이야기 구조가 글쓰기의 모범을 보여준다고도 했다.
"오늘날 대작(大作) 영화에 쓰이는 이야기 기법들이 '일리아스'에 이미 다 나와 있다.
'일리아스'는 시작부터 '사건 한복판'으로 들어간다.
트로이 전쟁 10년째, 그리스군에서 질병이 돌아 병사들이 쓰러지자 장수들이 회의를 소집하는 장면이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됐고, 어떻게 전개됐는지 하는 설명은 차차 나온다.
중심적인 사건을 다루면서 조금씩 그 앞뒤의 일을 채워넣어 작품이 끝날 때쯤이면 전체를 조감할 수 있게 된다."
―국내의 그리스·로마 고전 번역은 어느 단계인가.
"천병희 선생님이 최근 소포클레스, 아이스퀼로스, 에우리피데스 등 희랍 비극작의 33편 원전 번역을 마무리했다.
―국내의 그리스·로마 고전 번역은 어느 단계인가.
"천병희 선생님이 최근 소포클레스, 아이스퀼로스, 에우리피데스 등 희랍 비극작의 33편 원전 번역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로마 비극은 손도 못 댔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생물학 저서는 번역이 안 됐다.
그리스·로마 고전은 자료의 보고(寶庫)이자 원광석(原鑛石)이라고 말하면서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