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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돼요, 안돼, 안돼"… 일본이 'NO'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바람아님 2016. 4. 17. 08:43

(출처-조선일보 2016.04.16 어수웅 기자)

야스쿠니·위안부·집단 자위권 등 전후 세계관 달라진 '우향우 일본'
知日·克日 위한 '일본 현장 읽기' 한국의 내일 설계하는 계기로

일본 직설(直說)유민호 지음|정한책방|328쪽|1만5000원

민족주의는 그 가공할 결집력 때문에 종종 위험하다. 반일(反日)도 그중 하나다. 
물론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책임은 섬나라에 우선 돌아가겠지만, 이 나라 정치인들은 
자신의 잘못이나 내부 모순마저도 반일 감정으로 돌파하려는 유혹에 시달린다. 반일이야말로 
분노하는 한국인의 마음을 하나로 결집시키고 치유하는 만병통치약인 경우가 많으니까.

'일본 직설'은 종군위안부나 아베 총리의 이름만 들어도 분노가 끓어오르는 한국인에게는 
조금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극일(克日)과 지일(知日)을 위해 분노를 잠시 가라앉히고, 
세상이 한국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천동설(天動說)이 아니라 지동설(地動說)의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자 제안한다. 
저자는 SBS 기자로 일하다 일본의 엘리트 양성소인 마쓰시타 정경숙(政經塾) 5년 과정을 졸업하고 
지금은 워싱턴의 컨설팅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유민호(54)씨. 주간조선 월간조선 등에 활발한 기고를 하고 있는 
저널리스트이기도 하다. 학문적 깊이보다는 '페이스 투 페이스(face to face)'의 인터뷰와 현장으로 가득한 
'오늘의 일본 읽기'라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도쿄 시부야에 있는 3층짜리 셰어하우스(sharehouse) '시부하우스'를 찾아간다. 
1층 잠자는 곳, 2층은 공부·인터넷·파티 공간, 3층 창고인 건물인데 서로 전혀 모르던 젊은이 30여명이 공유하며 
월세 1만엔(약 10만5000원)씩을 내고 살아가는 21세기 일본의 새로운 거주 양식이다.

2016년의 일본을 대표하는 대중문화 현장에는 48명으로 이뤄진 걸그룹 AKB48이 있다. 
2005년 출범 이래 경연(競演)을 통한 구성원 교체와 진화로 10년 넘게 부동의 인기를 유지하는, 
우리 예능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의 원조격 일본 아이돌이다. 
그는 도쿄 오리콘 스타디움에서 매년 열리는 AKB48의 '총선거'를 찾아간다. 
300명의 상하우열을 매겨 승자만이 살아남는, 일본에서는 예외적인 약육강식의 현장이다.

2014년 아베가 야스쿠니신사를 방문했을 때 미국은“실망했다(disappointed)”라는 짧은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표현이 백악관도 국무부도 아닌 일본 주재 미국 대사관이 발표했다는 사실은 국내에서 크게 다뤄지지 않았다. 
한국이‘반일 만병통치약’에 취해 있는 동안 일본은 미국·러시아·유럽 심지어 아프리카와 남미까지 외교적 행보를 넓히고 
있다. 사진은 뙤약볕 아래 줄지어 야스쿠니신사의 참배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일본인들. /AP 연합뉴스

현장 취재와 인터뷰를 통한 그의 메시지는 간명하다. 
과거에 매달리지 말고 현재와 미래의 관점에서 일본을 이해하자는 것. 
일본에 지지 않으려면 일본보다 더 열심히 파고들어야 한다는 것. 
일본의 2030세대에 주목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일본 청년들은 척박한 세상과 선을 그은 채 개개인이 가진 세계관으로 문제를 풀어간다. 
흙수저나 갑을 관계 등 세상을 원망하는 모습은 찾기 어렵다. 
하지만 "머리가 텅 빈,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는 약한 캐릭터"라는 선입관은 천만의 말씀. 
아베나 미·일 동맹 등 거대담론 대신 그들의 관심은 하위문화다. 
어정쩡하게 끼어들었다가는 상대도 되지 않는다. 관심은 늘 자기 자신. 
내 생각을 세상에 구현하려면 어떤 삶이 가장 바람직할까, 자신에게 가장 솔직한 인생은 무엇일까. 
'있는 그대로'(ぁりのまま)와 '자기 찾기'(自分探し)가 키워드다.

일본의 운동권이라 할 '단카이(團塊) 세대' 차원에 머물러 있을 대다수 한국인의 대일(對日) 선입관 역시 일거에 무너뜨린다. 
저자는 2013년의 일본을 뜨겁게 달궜던 TBS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의 대사를 인용한다. 
"버블 경제 당시 황당하게도 무조건 돌격 식의 경영 전략으로 인해 은행이 혼란에 빠졌다. 
그놈들, 단카이 세대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학생 시절 때는 전공투니 혁명이니 하면서 떠들고 다니다가 결국 자본주의에 굴복해 회사에 들어온 줏대도 없는 인간들이다. 
생각한 것을 도중에 포기한 겁쟁이들이다."

1970년대생 은행원 한자와는 자신을 포함한 후배 세대에게 경제적 고통을 안겨준 60대 단카이 세대와 50대 버블 세대에게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절대복종이 미덕이던 전후 일본인의 사고방식이 젊은 세대에서는 극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

부드러운 문화 콘텐츠로 시작한 일본 읽기는 이제 '우향우 일본'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 정치·경제 차원의 읽기로 심화된다. 
몇몇 키워드와 데이터가 있다. 
2014년 일본을 대표하는 유행어 1위는 '안돼요, 안돼, 안돼'였다. 
70대 신랑과 젊은 로봇 신부(新婦)가 주인공인 코미디의 대사로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내를 '그녀'는 늘 거부한다. 
얼핏 황당한 코미디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전후의 일본인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결의가 있다는 해석이다.

원래 일본인은 '노'(No)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 
No라고 외치는 순간 상대방을 적으로 만들고 상황이 한순간에 어색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세 번이나 연거푸 NO. 결국 이 유행어는 '자위대의 집단적 자위권'과 '종군위안부' '중국의 영토 침범'에 대한 
일본인의 의식을 보여주는 상징이라는 것.

전쟁 포기를 선언한 헌법 9조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 변화,  자위대 군인이 일본 여성들의 배우자 1순위가 된 현상, 
일본을 신뢰하는 미국인보다 미국을 신뢰하는 일본인이 훨씬 적은 설문 조사 등의 수치와 데이터는 이 의심 많고 
조심스러운 나라의 속내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일본의 현재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당연히 한국의 내일을 읽기 위해서다. 
현장에 바탕을 둔 섬세한 한·일 비교라는 점에서 필요한 독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