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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야기] 중세 수도원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비밀 밝혀보니…

바람아님 2016. 4. 13. 08:21

(출처-조선일보 2016.04.07)

뛰어난 통찰력 가진 윌리엄 신부… 수도사들 살해한 범인 찾기 나서
범인의 맹목적인 믿음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이 죽게 됐어요

지난 2월 19일 기호학·철학·미학·중세 역사학의 권위자이자 작가인 움베르토 에코가 세상을 떠나자, 많은 사람이 

"우리 시대의 지성이 졌다"며 애도했지요. 오늘은 움베르토 에코의 대표작인 '장미의 이름'을 같이 읽어요.

수도원에서 발생하는 의문의 죽음

1327년 이탈리아, 젊은 수도사 아드소와 그가 선배로 모시는 윌리엄 신부가 베네딕트파의 한 수도원을 방문해요. 

수도원장은 뛰어난 통찰력을 가진 윌리엄 신부에게 얼마 전 이 수도원에서 한 수도사가 돌연사했다며 그의 죽음을 

조사해달라고 부탁하지요. 그 후에도 연이어 수도사들이 의문의 죽음을 맞아요. 

죽은 수도사들의 손끝과 입에서는 검은 물질이 발견되지요.

수도사들의 죽음을 악마의 소행이라거나 신의 뜻이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달리, 윌리엄 신부는 이성적인 판단으로 

명탐정처럼 수사를 이어가요. 윌리엄 신부의 침착한 태도는 그가 속한 교파인 프란체스코파와 관련이 있어요. 

'장미의 이름'에는 프란체스코파와 베데딕트파 두 교파가 등장해요. 

프란체스코파는 당시 재력과 권위를 가지고 있던 베네딕트파를 비판하며 청빈과 금욕을 강조하였고, 

인간의 이성을 바탕으로 기독교 교리를 이해하고 증명하려 했어요. 

반면 당시 주류 신학자들은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생각보다 순종적인 믿음을 중요하게 여겼지요. 

이것이 지나치다 보니 과학기술은 나쁜 마술이라고 생각하고, 범죄는 악마의 소행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많았고요.

기사 관련 일러스트
그림=이병익

합리적인 윌리엄 신부는 비행기를 연상시키는 '하늘을 나는 날틀'과 자율주행 자동차가 생각나는 '스스로 달리는 수레'가 

만들어질 수 있으며, 이것 또한 하느님의 뜻 안에 있는 미래라고 말합니다. 

"내가 이러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 뜻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어디, 어디까지가 하느님 뜻이라고 우리가 울타리를 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야." 

윌리엄 신부는 당시 성행한 종교 재판의 문제점도 넌지시 지적해요. 

"재판에서 악마는 혐의자들뿐만 아니라 재판관들에게도 그 권능을 행사한다."

타락한 수도사들과 이들의 비밀을 알고 있는 자들의 갈등, 신학자 사이의 갈등이 이리저리 뒤얽혀요. 

인물들의 복잡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불협화음은 작품의 음산함을 더하고, 진실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키지요. 

추리 끝에 윌리엄 신부와 아드소는 조금씩 진실에 가까워져요. 

그들은 방대한 규모로 동서고금의 책을 갖춘 수도원 장서관(藏書館·도서관)이 살인 사건과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되지요. 

그리고 드디어 '아프리카의 끝'이라는 이름을 가진 장서관의 밀실을 찾아냅니다.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 앗아간 잘못된 믿음

모든 살인 사건은 '시학 2권의 필사본' 때문에 벌어진 것이었어요. 

'시학 2권'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웃음에 대한 원리를 담았다고 전해지는 전설 속의 책이에요. 

현재 전해지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는 "웃음과 슬픔에 대해 쓰겠다"는 내용이 있는데, 

카타르시스를 비롯한 슬픔의 원리만 다루고 끝맺어버리기 때문에 웃음의 원리를 담은 제2권이 어딘가 존재할 것이라고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이죠. 움베르토 에코는 시학 2권의 필사본이 중세 한 수도원에 비밀리에 보관되어 있다고 가정했어요.

범인은 웃음을 하느님이 허락하지 않은 죄악이라고 생각해요. 당시 신학자들은 신앙은 근엄해야 하고, 

사람들은 신에 대한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고 믿으며 웃음을 멀리했는데, 

범인은 한발 더 나아가 웃음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악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아델모, 베난티오, 베렝가리오 등 죽은 수도사들은 모두 시학 2권의 유일한 필사본이 장서관에 있음을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손끝에 침을 묻혀가며 책을 읽다가 자신도 모르게 범인이 발라놓은 독을 먹게 되었어요. 

범인은 삐뚤어진 신념으로 여러 사람을 심판하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후대에 전하지 않으면 

인간의 웃음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어요. 윌리엄에게 모든 사실을 들킨 범인은 독약을 묻혀둔 책을 씹어 먹어요. 

그리고 수도원의 자랑이자 인류의 지식이 담겨 있던 고서들과 함께 불 속으로 사라지지요.

범인의 맹목적인 믿음은 범인 자신과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어요. 

불바다로 변한 수도원을 바라보며 윌리엄 신부는 아드소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요. 

"가짜 그리스도는 지나친 믿음에서 나올 수도 있고 하느님이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사랑에서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중략) 아드소, 선지자를 두렵게 여겨라. 

그리고 진리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를 경계하여라,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는 많은 사람을 저와 함께 죽게 하거나, 때로는 먼저, 때로는 저 대신 죽게 하는 법이다."

사람들은 정치나 종교, 삶의 방식에 대한 나름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지요. 신념이란 인생의 나침반과 같아요. 

나침반은 바른 방향을 가리키기 위해 언제나 파르르 떨고 있어야 해요. 

나침반이 떨림을 멈추고 한 방향으로 고정된다면 그 나침반은 더 이상 쓸모가 없지요.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고 다른 것은 모두 틀렸다고 여기는 맹목적인 신념이야말로 그릇된 믿음이 아닐까요? 

'장미의 이름'은 이러한 맹목적인 신념의 위험성을 깨우쳐 주고 있답니다.


움베르토 에코 사진

 /파리=사진작가 성지연

[이 책의 작가는?]

1932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움베르토 에코〈사진〉는 

토리노대에서 중세 철학과 문학을 공부했어요. 

그는 5년 동안 TV 방송국에서 일하다 1950년대 중반부터 대학 강단에서 

미학과 건축학, 기호학 등을 가르쳤어요. 

소설 ‘장미의 이름’, 에세이집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등을 남긴 

에코의 관심 분야는 정치·사회·문화·과학·미디어 등 매우 폭넓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