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의 정도가 지나치면 밤새 뒤척이며 잠들지 못했다. 낮에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머릿속에 떠올릴 때마다 그 모든 경험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무서웠다. 버스정류장에서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홀로 서 있던 것이나, 낯선 동네에 있는 친구 집에 갔다가 어스름할 때 홀로 집에 돌아왔던 일까지. 어떻게 겁도 없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갑자기 사람들이 괴물이나 악당으로 돌변해서 나를 해치거나 어디론가 끌고 가면 어떡하려고?
그러나 아침이 되면 두려움은 말끔히 사라졌다. 혼자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고, 사람이 바글바글한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군것질을 하기도 했다. 낯선 사람들, 낯선 거리가 전혀 무섭지 않았다. 거리에서 만나는 보통사람들은 다른 이들을 해치지 않는다는, 책에서 일어나는 일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듭된 경험에서 생긴 믿음 때문이었다. 길에서 넘어진 나를 일으켜 세워 주거나, 한눈 팔다가 차에 치이지 않도록 주의를 주는 선의는 낯선 이들로부터 나왔다. 그들은 나를 모르고, 나에게 특별히 관심이 없어도, 혹은 그렇기 때문에 무심하게 선의를 베풀었다.
내가 착하고 네가 악하다는 것, 내가 강하고 네가 약하다는 것을 규정하기 이전에 사람들이 서로에게 갖는 신뢰와 선의가 있음을 믿고 싶다. 그것 없이 어떻게 모르는 이가 운전하는 버스를 탈 것이며, 수많은 사람이 걷고 있는 거리를 걸을 것인가? 누구를 사랑하고 미워할지 가르기 이전, 특별하지 않은 우리 사이에 이미 오고가는 사소하고 느슨한 선의가 새삼 고맙고 소중하다.
부희령(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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