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살며 생각하며>말매미처럼 한여름 울어봤으면

바람아님 2016. 5. 27. 23:38
문화일보 2016.05.27. 14:10

박동규 /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담장 위에 가시 달린 철망을 치고 살았던 적이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좀도둑을 막기 위해 담장 위에 가시철망 쳐놓은 것을 볼 수가 없게 됐다. 어쩌다가 오래된 마을을 지나다가 이 가시철망이 쳐진 담장을 보면 옛날에 좀도둑이 들었던 생각이 난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우리 집은 원효로 전차 종점에서 멀리 보이는 산꼭대기 성당 아래 단독주택이었다. 전차에서 내리면 골목길로 한참 가다가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가야 우리 집이 나왔다. 담장이라야 어린아이 키만 했다. 나무로 짠 대문에 내가 푸른 페인트칠을 해놓았다. 그때만 해도 좀도둑이 극성을 부렸다. 은수저나 신발, 심지어 빨랫줄에 걸어놓은 옷가지도 훔쳐갔다. 어느 날 아침, 어머니가 부엌문을 열더니 놋그릇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집어갔다고 낙담한 적도 있다. 그리고 이 놋그릇 사건은 어머니의 가슴에 큰 상처를 남겼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여름이 가까워오던 어느 날이다. 나는 한 달 넘게 어머니를 졸라 새 운동화를 사서 신고 학교에 갔다가 돌아왔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곧장 운동화를 벗었다. 그러고는 운동화를 신발장 안쪽 깊숙이 밀어 넣었다. 다음 날 아침, 학교에 가려고 가방을 들고 현관에 서서 신발장을 열었다.

그런데 새 운동화가 보이지 않았다. 낡은 아버지 구두는 그대로 있었다. 내 운동화만 없어진 것이다. 간밤에 좀도둑이 들었음을 알았다. 당장 운동화 찾을 길이 없어 옆구리가 터진 낡은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데 알 수 없는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골목을 벗어나 오르막길로 접어드는 곳에 연탄가게가 있었다. 그런데 가게 낡은 창문에 시간제로 일할 사람을 구한다는 쪽지가 붙어 있었다. 순간적으로 연탄 나르는 일을 도와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어느새 나는 가게 안에 들어서 있었다. 젊은 아저씨에게 수업 끝나면 가게에서 일하겠다고 했다. 아저씨는 저녁 무렵 한두 번 산동네에 리어카로 연탄을 나르면 된다고 했다.


다음 날 오후 학교에서 돌아와 책가방을 내려놓곤 집을 빠져나와 아저씨네 가게로 갔다. 리어카에 연탄을 싣고 산동네 집에 부려놓고 내려오는 일을 하루에 두 번씩 했다. 힘이 들긴 했지만, 주저앉을 정도는 아니었다. 가끔 아저씨가 앞에서 리어카를 끌 때면 나는 뒤에서 밀어주기만 하면 되었다. 어둑어둑해서 리어카를 끌었기에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기를 한 달쯤 했을까. 땀을 흘리며 산동네에 연탄을 배달하고 오자 아저씨가 가게 안에서 의자를 권했다. 주인아저씨는 내게 누런 봉투를 내밀었다. ‘한 달간 열심히 일해줘 고맙다’는 인사말도 했다. 돈 봉투라 얼른 손이 나가지 않았다. 아저씨는 내 등을 다독여 주었다. 캄캄해진 집으로 올라가는 길옆 시멘트로 만든 쓰레기통에 걸터앉아 봉투 안의 돈을 꺼내 보았다. 운동화를 새로 사고도 많이 남을 정도의 돈이었다. 운동화값만 봉투 안에 남겨놓고 나머지 돈은 다른 주머니에 넣고는 아랫동네로 갔다. 빵 가게에 들어가 동생들에게 줄 빵을 샀다. 그리고 시장 안 정육점에 가서 불고기용 쇠고기도 샀다.


양손에 가득 산 것들을 들고 집으로 갔다. 부엌에 들어가 어머니에게 정육을 내밀었다. 어머니는 어디서 났느냐고 물었다. 나는 연탄가게 일을 도와주고 받은 돈으로 샀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냥 ‘그래’ 하고 대답했다. 내가 돌아서 나오려니까 “온 가족이 잘 먹겠다”고 하셨다.


그날 밤, 나는 쓰고 남은 나머지 돈을 어머니 앞에 내밀었다. 그러면서 이 돈으로 놋그릇을 사시라고 했다. 그제야 어머니는, 내가 너무 놋그릇 잃어버린 것을 슬퍼하니까 네가 연탄가게 일을 한 거구나 하셨다. 나는 내 새 운동화도 잃어버렸는데요 하고 말했다. 어머니는 “네 운동화도 좀도둑이 훔쳐 갔니” 하고 놀라셨다. 한 달 전에 한 번 신은 운동화가 없어진 것을 그때까지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참 신기한 일이다. 마치 좀도둑한테 복수하듯이 천신만고 끝에 새 운동화를 샀는데, 며칠 동안 운동화를 신고 다니니까 다른 생각이 났다. 어머니가 놋그릇을 잃어버리고 상심하시면서 “처음 서울에 올라와 장만한 것인데…” 하고 중얼거리시던 말씀이다. 어머니가 고향에서 서울로 올라왔을 때 우리 집은 변변한 살림살이도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해인가, 아버지가 시집을 발간하고 받은 돈을 어머니에게 주셨고, 어머니는 그 돈으로 아버지의 밥그릇과 국그릇을 놋그릇으로 바꾼 것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좀도둑이 집어간 놋그릇에 대한 아쉬움이 더 깊었던 것이다. 나는 운동화를 사지 말고 놋그릇을 사올 걸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뿐이었다. 물론 운동화를 다시 신고 싶은 마음이 연탄가게에서 일을 하게 했지만, 꼭 그것만은 아니었다. 다시 운동화를 사 달라고 조르면 어머니는 언젠가는 꼭 사주셨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의 슬퍼하는 얼굴을 보기 싫었고, 내가 다시 어머니를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여름 매미는 오로지 울기만 한다. 울음은 매미의 모든 것이다. 하나의 생명이 하나의 소리로 소멸되는 매미를 보면서 내가 살아온 길에서 매미처럼 오롯이 하나를 위한 집중이 있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눈 딱 감고 사랑에 매달려 본다든가, 아니면 일에 매달려 본다든가 하는 시간은 장마철 잠깐 보이는 햇볕처럼 짧은 순간이었으리라. 리어카를 끌고 산동네에 연탄을 배달하던 그 집중의 순간이 오늘 기억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