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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유형진] 서쪽으로 난 창문

바람아님 2016. 5. 29. 23:58
국민일보 2016.05.29. 19:02

십년도 넘은 일이다. 남편은 회사 일로 해외 장기 출장이 잦았다. 바쁘고 급한 일을 처리하러 간 거라 한번 나가면 석 달도 넘게 집에 올 수 없었다. 나는 그때 젖먹이 아기의 엄마였다. 우리가 살던 집은 G시의 변두리, 교회 뒤에 있던 주택 2층이었다. 그 집은 베란다도 없는 거실 창이 유일하게 바깥을 볼 수 있는 창이었는데 서향이었다. 다른 창으로는 남의 집 창문만 보여서 창을 열 수 없었다. 마주보는 집이 동시에 창을 열면 옆집은 솔직히 남의 집이라고 할 수 없이 가까웠다. 살짝 창을 열어보고 옆집이 열지 않았으면 더 열고 커튼을 내려야만 했다. 그런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그 집이 좋았던 것은, 서쪽으로 난 창문을 열면 교회 첨탑 십자가 뒤로 지는 석양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오지 않는 저녁이면, 잠투정하는 아이를 안고 서쪽 하늘을 보며 울었다. 해가 뜨는 동쪽 하늘을 보며 우는 것은 왠지 어울리지 않지만, 해가 지는 서쪽 하늘을 보며 우는 것은 왠지 청승과 처량함이 증폭되면서 그럴듯했기 때문이다. 해도 지고, 울음도 그치면 아무라도 우리 집에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라도 집에 와서 아무 ‘말’이라도 해준다면, 내 품의 아기를 잠시 안아주어, 내 손으로 뭘 할 수 있게 된다면. 이 작은 생명을 책임지는 일에 대한 공포를 조금이나마 떨쳐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나와 우리 아기의 구세주는 아직은 아가씨였던 내 동생이다. 동생은 이 딱한 언니와 조카를 보려고 자주 우리 집에 와서 자고, 다음날 출근하곤 했다. 말도 못하고 팔 다리만 흔들며 꼬물거릴 때 눈 맞춰주고, 안아주고, 딸랑이를 흔들어주던 사람이라 그런지 중학생인 지금도 이모를 아빠만큼이나 좋아한다.


“내가 너희 키울 때는 젖 주고 밥 먹이는 게 다였는데. 요즘은 애 하나 키우는데도 해야 할 것, 시켜야 할 것이 많아서 더 애먹는 것 같다.” 엄마는 종종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엄마가 우리를 키우시던 40년 전과 지금, ‘육아 환경’은 얼마나 달라진 걸까? 체감되는 시차는 거의 백년의 차이처럼 느껴진다.


유형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