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선우정 칼럼] 베트남, 히로시마, 리수용

바람아님 2016. 6. 1. 08:56

(출처-조선일보 2016.06.01 선우정 논설위원)

일본만 얽혀들면 한국의 시야는 과거로 흘러간다
현실과 미래를 바꿀 美·中 동북아 게임을 파편적으로 바라본다

선우정 논설위원짧은 시가 긴 소설보다 본질을 잘 설명할 때가 있다. 
일본 시인 구리하라 사다코가 1976년 쓴 '〈히로시마〉라고 말할 때'가 그렇다. 
'〈히로시마〉라고 말하면/ 〈아아 히로시마〉라고/ 따뜻하게 대답해 줄까/ 
〈히로시마〉라고 말하면 〈진주만〉/ 〈히로시마〉라고 말하면 〈난징 학살〉/ …/ 
〈히로시마〉라고 말하면 피와 불꽃의 메아리가 돌아온다….'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드러난 20년 후였다면 
작가는 '〈히로시마〉라고 말하면 〈위안부〉'란 문장도 어딘가에 적었을 것이다. 
작가는 에두르지 않고 시를 끝낸다. 
'따뜻한 대답이/ 돌아오려면/ 우리는/ 우리의 더러운 손을/ 씻어야 한다.'

케리 미 국무장관이 히로시마를 방문할 때만 해도 설마 했다. 
'일본은 '더러운 손'을 씻지 않았다. 그러니 미 대통령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오바마 대통령은 히로시마에 갔다. 
'원폭 돔'을 배경으로 아베 총리의 어깨를 다독이는 장면, 
백발의 피폭자를 가슴에 얼싸안은 장면은 원폭이 일으킨 버섯구름 사진만큼 상징적이다. 
"71년 전 맑은 아침, 하늘에서 죽음이 떨어져 내렸다"는 연설 내용, 
이렇게 말한 대통령을 거칠게 몰아세우지 않은 미국 내 여론에도 놀랐다.

우리는 복잡한 시선으로 히로시마를 바라봤다. 우리만의 복잡한 역사를 통해 현실을 해석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원폭으로 한국은 해방됐다. 
미 대통령의 히로시마행(行)은 일본의 전쟁 책임과 식민지 지배 책임을 희석할 수 있다. 
그래서 반대하고 우려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엔 반대편 역사를 내세웠다. 미 원폭으로 한국인 수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한국은 피해국이다. 
그러니 미 대통령이 히로시마에 간다면 한국인 위령탑도 참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논법을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지배·피지배의 선악 논리에 익숙하지 않은 타국엔 이율배반으로 들릴 수 있다. 
한국은 원폭을 불러들인 쪽이 일본이라고 믿는다. 한국인 희생도 일본 때문이다. 
그러면 한국인 위령비 참배를 요구할 대상은 일본 총리 아닐까. 
그런데 왜 미 대통령의 참배를 요구하나. 
미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우려하고 반대하면서 한국인 위령비 참배를 요구하는 건 모순 아닌가. 
이런 시각에서 미 대통령에게 이런저런 요구를 하는 한국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한다.

백악관은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이 원폭 투하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를 뜻하지 않는다고 누차 주장했다. 
일본의 전쟁 책임에 면죄부를 주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일본 정부와 주류 언론 역시 단 한마디, 단 한 줄도 그렇게 해석하지 않았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은 사과하지 않았고 고개를 숙이지도 않았다. 
오직 '핵무기 없는 세상'을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인 위령비를 찾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방문이 역사 문제, 특히 식민지 지배 문제로 해석되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 아닐까. 
북핵을 알몸으로 마주한 한국만큼 '핵무기 없는 세상'이 절실한 나라도 없다. 
"아아 히로시마"라고 따뜻하게 말할 순 없지만 그렇게 말하는 우방을 최대한 이해해야 하지는 않았을까.

오바마 대통령은 방일에 앞서 베트남을 방문해 50년 넘게 이어진 무기 금수 조치를 풀었다. 
미제(美製) 무기로 베트남을 무장시키겠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그 연장선상에서 해석하는 게 현실적이다. 
베트남과 일본은 각각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미국과 손을 잡고 중국에 대항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에서 '핵무기 없는 세상'만큼 강조한 것도 미·일 동맹이었다. 
중국이 참배 당일 미국의 중국 포위망을 비난하면서 "난징 학살을 잊으면 안 된다"고 날카롭게 반응한 것은 
히로시마 방문의 정치적 의미와 맥락을 읽었기 때문이다. 
중국이 어제 리수용 북한 노동당 정무국 부위원장을 돌연 베이징에 불러들인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복잡한 정세를 한국은 오직 자신만의 특별한 역사적 경험에 얽매여 파편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강국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땅에 살고 있다. 이런 국민일수록 깊이 생각하고 크게 바라봐야 한다. 
그런데 일본만 얽혀들면 우리는 현실을 과거 잣대로만 해석한다. 
선악 구분을 통해 피아를 혼동할 때도 있다. 
역사를 내세우면 세상이 우리 처지를 이해하고 주장에 동조할 것이라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미 대통령은 일본의 '더러운 손'을 잡았다. '진주만' 대신 '아아 히로시마'라고 따뜻하게 대답했다. 
승자의 여유가 아니다. 
역사보다 현실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 당연한 원칙을 앞으로 한국에도 요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