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20대 국회가 처한 환경은 그 어느 국회보다 엄혹하다. 2%대에 고착된 저성장 경제와 청년실업 대란, 그리고 북핵 위기, 미국 대선까지 겹쳐 나라가 미증유의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런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4대 공공부문 개혁, 경제살리기 등의 법안들은 표류를 거듭한 끝에 고스란히 20대 국회로 넘어온 상태다.
20대 국회가 이런 난관을 극복하고 성과를 이룰 길은 하나뿐이다. 대립과 정쟁 대신 대화와 타협을 통한 ‘협치’로 돌아서는 것이다. 이는 총선에서 어느 정당도 과반을 이루지 못하게끔 표를 배분한 유권자들의 엄명이기도 하다. 이런 민심을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3당도 어느 정도 헤아렸기에 지난 13일 청와대에서 만나 협치를 약속했던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협치 정신은 20대 국회가 문을 열기도 전에 흔들리고 있다. 박 대통령은 국회 개원을 사흘 앞두고 ‘상시 청문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던졌다. 야당은 극력 반발하며 ‘협치 파기’를 선언했다. 이대로라면 다음달 7일 열릴 20대 국회 첫 본회의에서 의장단 구성을 완료키로 한 3당 간 약속도 지켜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여야가 협치는커녕 첨예한 대치전선 위에 마주 서는 것이다.
게다가 20대 국회는 내년 대선을 맞게 된다. 자칫하면 법안 처리는 제쳐두고 여야가 대권싸움에 몰입하는 ‘불임 국회’가 될 수도 있다. 이미 정치권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 수많은 잠룡들의 등장과 함께 정당·계파별 이합집산과 대권후보를 향한 줄서기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런 행태가 과열로 치달으면 민생을 비롯한 국회 본연의 임무는 뒷전에 밀릴 게 불 보듯 뻔하다.
정치가 마비돼도 경제가 받쳐준 덕분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시대는 지나갔다. 20대 국회마저 입법 마비의 수렁에 빠진다면 우리 경제는 반전의 기회조차 잡을 수 없는 항구적 디폴트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국회가 국민 앞에 씻을 수 없는 대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여야 모두 협치의 약속을 되살려 타협과 양보의 정치를 복원하는 게 급선무다. 일방독주가 불가능해진 여당은 물론 국회 다수당이 된 야당들도 어느 때보다 책임이 무겁다. 여야 모두 달라진 위상을 깨닫고 변화하는 것만이 살 길이다. 청와대의 인식 전환도 절실하다. 국회가 대통령 발목을 잡는다고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야당과 진심으로 소통하고 협조를 구하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20대 국회의 성패는 여야와 함께 청와대가 얼마나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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