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치료는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치료 방식이다.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 인공적 영양공급 등을 통해 심장을 뛰게 하고, 각종 검사와 투석,
영상 촬영 등을 통해 환자의 상태를 확인한다.
의료계는 "폐렴을 제외하면 중환자실에 들어간 환자 중에 제 발로 걸어나오는 확률은 10%도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회복 가능성이 없는데도 무의미한 치료를 이어가는 것이다.
정부는 호스피스 완화병동의 건강보험 적용과 연명치료 거부 법제화 등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을 위한 제도 마련에 나서고 있다.
◆차마 끊지 못하는 연명치료
지역 한 대학병원에 위암으로 입원했던 A(78) 할아버지. 수술과 거듭되는 항암 치료로 몸은
만신창이가 됐다. 계속된 치료에도 불구, 병세는 호전되지 않고 있다.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고, 음식을 먹는 일도 불가능해 영양 주사로 근근이 버틸 정도였다.
의료진은 회복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사전의료의향서를 제안했지만
가족들은 거부했다. 결국 그는 지역의 한 요양병원으로 옮겨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몇 달간 버티다가 세상을 떠났다.
최근 119구급차량을 타고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B(80) 할아버지도 사정은 비슷했다.
평소 고혈압에 시달리던 그는 갑작스러운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왔다.
다행히 심장은 살렸지만 뇌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다른 검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나빴지만 두 자녀는 끝까지 치료해 달라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응급실에서만 2주가량 머물던 B씨는 호전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인공호흡을 받는 상태로
요양병원으로 옮겨졌다.
아직 숨은 붙어 있지만 가족들을 알아보지도, 단 한마디의 말도 건넬 수 없다.
연명치료는 대부분 보호자의 의견에 따라 결정된다.
환자가 '사전의료의향서'를 쓰고 연명치료를 거부하더라도 가족들이 무시하면 그만이다.
법적인 효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사전의료의향서를 썼다가도 며칠 뒤 찾아와 철회하는 경우도 적잖다.
경북대병원 응급의학과 안재윤 교수는 "일단 인공호흡기가 장착되면 임종 전까지는 제거할
수 없기 때문에 미리 연명치료에 대한 의사를 묻는다"면서
"불필요한 연명치료는 환자에게 고통을 주고 가족들은 수천만원에 이르는 병원비까지
부담해야 하는데도 선뜻 결정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계명대 동산병원 혈액종양내과 송홍섭 교수는 "환자들이 인공호흡이나 심폐소생술 거부는
인정하고 있지만 수혈이나 영양 공급 등에 대해서는 기준이 없어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4년간 연명치료 1만 명 넘어
치매나 중풍, 파킨슨병, 암 등으로 장기요양보험 서비스를 받는 환자 10명 중 3명이
임종 직전까지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한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지난해 말 발표한 '노인장기요양보험 인정자의 사망 전 급여
이용 실태 분석'에 따르면 2008~2012년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을 받고 치료를 받다가
세상을 떠난 23만7천385명 가운데 31.8%인 7만5천451명이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 등의
연명치료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기간 대구경북에서 숨진 장기요양보험 급여 이용자가 3만1천917명인 점을 감안하면
대구경북에서도 1만 명 이상이 연명치료를 받다가 세상을 떠난 것으로 추정된다.
숨지기 한 달 전 진료 현황을 보면 장기요양보험 급여 환자는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
인공적 영양공급, 컴퓨터단층촬영(CT), 중환자실 입원, 혈액 투석, 자기공명영상진단(MRI),
양전자단층촬영(PET) 등 연명치료 범위에 해당하는 치료를 받았다.
가장 많이 이뤄진 연명치료는 인공적 영양공급으로 15.2%를 차지했고, 컴퓨터단층촬영
(14.9%), 인공호흡(9.0%), 중환자실 입원(4.6%), 심폐소생술(4.0%) 등의 순이었다.
이 가운데 연명치료를 3가지 이상 받은 환자도 2만8천800명이나 됐다.
연명치료는 환자와 가족들에게도 큰 경제적 부담이 된다. 장기요양보험 급여 이용자가
사망하기 전 1년 동안 쓴 건강보험 진료비는 1천425만원에 이른다.
입원비가 1천157만원으로 가장 많고, 외래 진료비 118만원, 약국 95만원 등이었다.
진료비는 임종에 다가갈수록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임종 1년 전에 월 64만5천원이던 진료비는 6개월 전에는 119만원으로 1.8배 증가했고,
사망 한 달 전이 되면 209만원으로 2.1배 불어난다. 임종에 다가갈수록 병원에 머물며
입원비로 지출하는 비용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상급종합병원으로 갈수록 부담은 더욱 커진다. 사망 전 한 달간 1인당 평균 급여비는
상급종합병원이 154만원으로 가장 많고, 요양병원 140만원, 종합병원 116만원,
병원 67만원, 의원 9만원, 보건기관 3만원 등의 순이었다.
연명치료가 길어지면 경제적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한 달 입원 때 중증 암의 진료비는 1천410만원이나 된다. 파킨슨병은 1천491만원,
만성폐질환 1천318만원, 만성신부전 1천590만원, 치매 766만원 등이었다.
◆연명치료에 대한 생각, 이제는 바꿔보자
O(68`경산) 할머니는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심폐소생술 거부' 사전의료의향서를 최근 썼다.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으며 진지하게 죽음에 대해 고민한 결과라고 했다.
할머니는 "마지막 순간까지 인공호흡기를 달고 의식도 없이 세상을 떠나기는 정말 싫다"면서 "가족들에게도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고 했다.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지난 2013년 7월 권고안을 마련했다.
사전의료의향서가 없어도 가족 2명 이상이 평소 환자의 뜻을 확인해 주거나 가족 전원이
합의하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동안 고심하던 보건복지부도 올해 안에
최종안을 확정하고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다.
올 하반기부터 도입되는 호스피스 완화병동의 건강보험 적용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앞으로 호스피스 병동 5인실에 입원한 말기 암환자의 경우, 하루 평균 1만5천원만 부담하면
된다. 4천원을 더 내면 간병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완화병동을 이용하지 않는 중증 암환자는 한 달 입원하면 진료비가 1천630만원에 이르지만,
7월부터 완화병동에 입원하면 본인부담금은 최대 57만원까지 떨어질 수 있다.
복지부는 하반기부터 가정 호스피스 시범사업도 도입하는 등 다양한 호스피스 서비스에
건강보험을 적용할 계획이다.
영남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이경희 교수는 "완화의료에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수익성 때문에
주저하던 병원들이 호스피스 병동을 확대하고, 환자들의 인식도 달라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