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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유형진] 개돼지의 생각

바람아님 2016. 7. 10. 23:49
국민일보 2016.07.10. 17:26

무슨 일로 혼났던 건지 이유는 기억 안 난다. 엄마는 몹시 화가 나 계셨고, 나와 내 동생은 화난 엄마의 불똥을 피해 집을 나왔다. 집을 나와봤자 우리가 갈 곳은 뻔하다. 같은 동네에 있는 큰집. 큰집엔 우리와 나이 차이가 그만그만한 사촌 언니들과 동생들이 있다. 큰언니는 떡국 해 먹으려고 썰어놓은 얇은 떡을 항아리에서 한 바가지 꺼내어 씻고 있었다. 그리고 간장과 설탕, 후추와 고춧가루만 넣은 떡볶이를 했다. 

큰엄마는 “엄마는 뭐 하시니?” 물어보셨고, 나는 쭈뼛거리다 엄마에게 혼난 이야기를 했다. 큰엄마는 뜨개질을 하고 계셨다. 작년에 입던 큰아버지 조끼를 풀어 말린 실로 사촌 남동생의 스웨터를 뜨고, 남은 실로 언니들의 목도리를 뜨시며, 우리 엄마가 왜 그랬을까 이야기해주셨다. 우리는 떡볶이를 먹고 언니들과 놀다 해가 질 무렵에야 집으로 돌아갔다. 큰엄마는 저녁도 먹고 가라고 하셨지만.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하나의 마을이 필요하다’는 인디언 속담이 있다. 한 아이가 옳게 크려면 부모 교육으로는 모자란다는 뜻이다. ‘아이’란 미래사회의 자산이다. 때문에 옛날 내가 살던 동네 어른들은 남의 집 아이건 우리 아이건 동등하게 대했다. 남의 집 아이가 혼자 길을 가다 넘어져 무릎이 깨지면 그 아이 보호자를 찾을 게 아니라 가까운 집에 데려가 상처를 씻어주고 ‘아카진기’를 바르고 밴드를 붙여주었다. 내 아이가 아니라고 우는 아이를 길에 내버려두지 않았다.


남의 집 아이가 길에서 죽은 게 뭐 그렇게 애석하냐고, 모두 위선이라고. 그리고 그러한 다수의 사람들은 ‘개돼지’라고 한다고. 이 나라의 교육부에서 정책기획을 한다는 사람의 말이다. 내 생각엔 남의 집 아이의 이른 죽음이 내 아이의 미래와 아무 연관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바로 ‘개돼지’가 아닐까 싶다. 인간이 짐승하고 다른 점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 그리고 고통스러운 이들과 미래사회 모두의 삶의 질을 연관지을 수 있는 능력이라고 알고 있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별로 수정하고 싶지 않다.


유형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