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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왕이 집착하는 '상징 일왕'이란 무슨 뜻?/[천자칼럼] 일왕 양위 서두르는 이유

바람아님 2016. 7. 15. 00:09
한겨레 2016.07.14. 14:56

일왕, 양위 의사 밝히며 ‘상징 일왕’ 언급
역사에 대한 반성 담긴 표현
아베는 거꾸로 일왕을 ‘일본국 원수’ 지위 변경 원해

아키히토 일왕이 지난 13일 “살아 생전 왕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의향을 밝혔다는 사실이 공개되며 일본 열도가 큰 충격에 빠졌다. 일왕이 이런 판단을 내리게 된 이유는 뭘까.

14일 일본 언론을 통해 유일하게 공개된 일왕의 발언은 “헌법이 정한 상징으로서의 업무를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일왕의 지위에 있어야 한다”는 내용 뿐이다. 표면적으로는 올해 82살로 고령인 일왕이 체력적인 이유로 더 이상 공무를 수행할 수 없으니 왕위를 아들인 나루히토(56) 왕세자에게 물려주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 발언 속엔 ‘헌법이 정한 상징’이라는 묘한 표현이 포함돼 있다. 1989년 왕위에 오른 아키히토 일왕은 즉위 후 1년 뒤인 1990년 “일본국 헌법에 정해진 일본국의 상징이며 일본국 통합의 상징으로서 현대 시기에 적합한 일왕의 직무를 수행하고 싶다”고 말했고, 2009년 11월에도 “지난 20년 동안 국민의 상징으로서 바람직한 일왕의 존재양식을 추구하면서 오늘까지 살아왔다”는 철학을 밝힌 바 있다.


일왕이 굳이 퇴임 의사를 밝히며 ‘상징 일왕’이라는 개념을 다시 꺼내든 것은 그가 현행 ‘일본국헌법’(1946년 제정)에 대해 갖는 강한 애착 때문으로 보인다.


일본을 결국 전쟁의 참화로 이끌고 만 ‘대일본제국헌법’(1889년)의 1조는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일왕이 이를 통치한다”고 씌여 있다. 이에 견줘 전후 만들어진 일본국헌법의 1조는 “일왕은 일본국의 상징이며, 일본국민통합의 상징이다. 이 지위는 주권을 가진 일본 국민의 총의에 근거한다”고 되어 있다. 세계 2차대전에서 참패한 일본인들이 이 조항을 통해 일본의 주권자는 일왕이 아닌 국민임을 명확히 선언한 것이다. ‘통치자’의 지위에서 내려온 일왕은 일본의 ‘상징’적인 역할에 머무르게 된다.


일본 헌법이 일왕의 지위를 ’상징’에 한정한 것은 일본이 지난 전쟁의 참화로 빠져든 가장 큰 이유가 옛 헌법이 일왕에게 부여한 ‘절대적 지위’에 있었다고 봤기 때문이다. 옛 일본 헌법은 4조에서 “일왕은 국가의 원수로 통치권을 총람한다. 이 헌법의 조문에 의해 이를 시행한다”며 일본이 입헌군주국임을 명확히 했지만, 동시에 11조에선 “천황은 육해군을 통수한다”는 조항을 삽입했다. 통수권, 즉 군에 대한 명령권을 갖는 것은 일왕 뿐이라는 선언이었다.


문제가 터진 것은 1930년 런던 해군군축 조약을 둘러싸고 터진 ‘통수권 논란’이었다 이 조약에 의해 해군이 보유할 수 있는 함선 수가 제한되자, 일본의 우익들은 헌법에 보장된 일왕의 통수권을 “정부가 침범했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이 조약의 책임자였던 하마구치 오사치 총리가 우익들의 총격을 받았고, 이후 등장한 이누카이 쓰요시 총리도 관동군이 상부 허가 없이 1931년 저지른 만주사변의 승인을 거부하다 청년 장교들에게 살해당한다. 


이후 1936년 터진 2·26 쿠데타를 계기로 일본의 의회 정치는 사실상 막을 내리고, 군부의 폭주가 시작됐다. 헌법학자인 고바야시 세쓰 게이오대학 명예교수는 지난 3월 발간된 <헌법개정의 진실>이라는 대담집에서 “통수권의 독립이라는 근거로 군대가 일왕의 이름을 내걸기만 하면 그 시점에서 누구도 돈을 댈 수 없게 됐다. 그 결과 군부가 함부로 만주에서 전쟁을 시작했고, 그로 인해 국가 전체가 슬금슬금 전쟁에 말려들어 그렇게 처참한 패전을 겪게 됐다”고 지적했다.


일왕의 이번 퇴위 의사 표명이 현행 평화헌법에 대한 일왕의 의사가 반영된 것이라 판단할 순 없다. 다만, 아베 총리가 개헌 논의의 베이스(기초)로 삼겠다는 2014년 4월 자민당의 헌법개정 초안엔 일왕의 지위를 일본국의 상징에서 “일본국의 원수이며 일본국과 일본국민의 통합의 상징”으로 변경하고 있다. 이 헌법이 뜻하는 원수(元首)가 어떤 의미인지는 명확치 않다.


일왕의 퇴위 의사 표명에 대해 일본 정부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아베 총리는 14일 기자들과 만나 “여러 보도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사안의 성격상 코멘트를 피하고 싶다”고 말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도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보도가 나오기 전까지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말했고, 궁내청에 사실 관계를 확인할 계획도 “특별히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천자칼럼] 일왕 양위 서두르는 이유

한국경제 2016.07.14. 17:50

일본 역사에서 일왕(日王)은 줄곧 남자였다. 고대에 6명의 여왕이 있었고 에도(江戶)시대에도 두 명의 여왕이 있었다지만 이들 모두 오래 재위하지는 않았다. 여왕에 대한 논란은 근대에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메이지 헌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여왕을 용인할 것인가에 대해 첨예한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여왕 논쟁은 1990년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즉위하면서 다시 불거졌다. 아키히토의 장남 나루히토 왕자는 2001년 딸을 낳긴 했지만 아들을 보지 못했다. 일본 언론이 들끓었다. 이번 기회에 여왕을 인정하자고 주장하는 편과 남성 계승의 혈통을 바꾸면 일본의 왕 제도가 사라질 것이라는 편으로 나뉘었다. 집권 자민당 내부에서도 편이 갈렸다.


일본 총리였던 고이즈미는 여왕제를 인정해 왕위 계승순위는 남녀를 불문하고 첫째 자녀를 우선으로 한다는 보고서를 2005년에 의회에 제출했다. 그는 이를 기반으로 왕실 규정을 개정하려 했지만 아키히토의 차남인 아키시노 왕자가 아들을 얻었다는 소식에 법안은 보류됐다. 지난 2011년에는 민주당 노다(野田) 정권이 여성 왕족이 결혼하더라도 왕족 신분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2012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이끄는 내각이 출범하면서 이런 논의는 물밑으로 사라졌다. 아베는 평소에 남성 전통의 왕실이 무너질 위험성을 우려했다고 전해진다.

어제 아키히토 일왕이 살아생전에 왕을 그만두고 왕위를 나루히토에게 양위할 것임을 내비쳤다. 일본 언론들은 일왕 퇴위기사로 도배질했다. 왕실 규정에는 생전 퇴위에 대한 조항이 없다고 한다. 때마침 아베 정권이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하면서 평화 헌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무르익고 있는 마당이다. 평소 ‘평화의 심벌’이기를 원했던 아키히토가 아베의 개헌을 저지하려고 퇴위라는 극약 처방을 했다는 견해도 있다. 아키히토는 아베와 달리 지금의 평화헌법을 지지하고 있다. 일왕의 양위가 아베와의 갈등 과정에서 표출됐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여왕에 대한 시비가 다시 일어날 조짐이다. 아키히토로서는 생전에 이 문제를 정리하기 위해 퇴위 카드를 던졌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일왕의 후계구도를 둘러싼 미묘한 신경전이 일본 정치계에 다시 감돌고 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일본 관료들의 속내도 들린다. 세계 곳곳에서 여성 대통령과 여성 총리가 잇달아 나오는 세상이다. 일본도 이런 분위기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춘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