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2016.07.12. 17:44
폭염주위보가 내려진 가운데 에어컨을 켜지 않고는 잠시도 운전을 할 수 없을 만큼 무섭게 덥다. 이 무더위에 작은 체구에 깡마른 초로의 노인이 비지땀을 뻘뻘 흘리며 빈 박스를 가득 실은 손수레를 끌고 차 옆을 지나갔다. 잠시 후 신호가 걸려 차들이 대기하고 있는데 우회전 차선에 직진 차량이 엉거주춤 걸려 있어 우회전을 하려는 노인은 어떻게든 빠져 나가려고 손수레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애를 쓰고 있었다. 차량을 조금만 움직여주면 빠져나갈 틈이 있겠는데 운전자는 상황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생계를 위협하는 더위에도 불구하고 하루를 ‘공치는 날’로 만들 수 없어 폭염 속에 몸을 맡기고 자신의 몸집보다도 훨씬 큰 손수레에 빈 박스를 한가득 싣고 힘겹게 걸음을 떼야 할 만큼 그의 삶은 절박한 것인가. 온 관심이 쏠려 있는 손수레에 담긴 것은 박스가 아니라 한 끼의 밥일 것이다. 아무리 시시해 보여도 먹고살기 위해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존경심을 가지라고 했던가.
혹독한 겨울 추위와 여름철 폭염과 맞서며 다른 이들이 주워가기 전에 폐지를 찾아 헤매야 하는 거리는 치열한 경쟁사회의 또 하나의 생존 현장이다. 청년이 하기에도 힘들고 고된 일을 극빈층 노인들이 생계수단으로 짊어지고 있는데 폐지업체 담합으로 폐지값마저 폭락했다지만, 어쨌거나 그들에겐 하루의 끼니가 걸린 황금 같은 돈이다.
세상 참 불공평하다. 내 손에 쥐었다고 돈을 물 쓰듯 마구 써도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단돈 몇 천원 벌어 보겠다고 온종일 땀범벅이 되어 폐지를 주어야 하는 사람이 있고. 어쩌면 저 노인의 진짜 힘든 삶은 손수레가 아닌 보이지 않는 곳에 담겨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에게 고통이 비례하지도 반비례하지도 않고, 더 많이 노력하고도 얻지 못하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가.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가든 고난의 시기나 종류가 다를 뿐 누구나 겪는 고통과 행복의 총량은 같다고 생각했다. 결국 인생은 공평해지는 것이라고. 그런데 정말 그럴까.
김세원(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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