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朝鮮칼럼 The Column] 기로에 선 '민주주의 평화론'

바람아님 2016. 7. 20. 07:19

(출처-조선일보 2016.07.20 김태효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민주주의 국가끼리는 서로 싸우지 않는다"는 마이클 도일의 '민주평화 이론'
北에 개혁 기운 불어넣어야 할 한국 통일 정책이 안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이기도

김태효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사진"민주주의 국가끼리는 서로 싸우지 않는다." 

국제정치학자 마이클 도일(Michael W Doyle)이 1986년에 '민주주의 평화이론(Democratic Peace 

Theory)'을 발표하자 오직 힘과 권력의 역학관계가 세계 정치를 지배한다고 믿었던 현실주의 학파는 

충격에 빠졌다. 

도일은 1816~1980년 사이에 일어난 국가 간 전쟁 118개를 나열하고 이 중 민주주의 국가끼리 싸운 

사례가 없음을 증명했다. 민주국가가 전쟁에 나선 경우는 비민주 세력에 맞서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것이었다. 도일은 민주주의의 평화 본능과 이에 대한 의무감이 이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가 주창한 자유주의적 국제주의(liberal internationalism)에 토대를 둔다고 했다.

1989년 소련이 붕괴하고 냉전 체제가 무너지자 민주평화 이론의 설득력은 배가됐다. 

영국, 프랑스·미국에서 싹터 200년 만에 50여개국으로 확산된 민주주의를 전 세계로 전파하기만 하면 전쟁 없는 

평화 질서가 완성된다는 명제가 설득력을 얻어갔다. 

탈냉전기 미국 대외 정책의 명분과 목표는 곧 자유와 인권의 확산이었다. 

걸프전쟁(1990년), 아프가니스탄전쟁(2001~2014년), 이라크전쟁(2003년)은 해당 국가 시민을 독재와 권위주의 체제에서 

구출해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안겨주기 위한 '고통스러운 의무'로 여겨졌다.

그러나 독재자가 물러나고 민주 헌법이 들어선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대다수 신생 민주국가들의 정치는 

여전히 혼돈과 갈등에 휩싸여 있다. 

민주주의가 빨리 전파되지도 않고 쉽게 뿌리내리는 것도 아니라면 '민주평화 질서'를 어떻게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론을 진지하게 돌이켜봐야 한다. 

자신들이 겪는 감시와 처벌의 일상이 얼마나 심각한지조차 가늠하지 못하는 북한 주민의 인권을 어찌할 것인가. 

북한 정권과의 잡음과 분란을 우려해 이를 방치할 것인가, 

힘들고 더디더라도 개방과 개혁의 기운을 북한에 불어넣겠다는 사명감을 안고 갈 것인가. 

민주평화론의 실현 문제는 한국의 통일 정책이 안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는 시작하기도 어렵지만 그릇되게 발전하면 방만해진다는 점이 드러났다. 

2010년의 그리스 국가 부도 사태는 한정 없이 후해진 복지 혜택과 임금 수준에 맛 들인 국민을 놓고 우파든 좌파든 집권을 

위해 퍼주기 공약 경쟁을 벌인 결과였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Brexit) 결정은 외부에 대한 적대감과 내부의 권력정치가 

맞물려 나타난 결과로 자신의 국익은 물론 전 세계의 정치경제 질서를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특정인 몇 사람이 커다란 결정권을 행사하는 공산사회주의 제도에 비해 민주 제도는 개개인의 능력이 달라도 모두에게 

똑같이 한 표의 결정권을 부여한다. 

하지만 정치의 주인인 국민이 '의식'을 놓으면 엘리트의 포퓰리즘에 농락당하는 중우정치(衆愚政治)로 귀결됨을 확인했다.

한국의 경우 스스로 성숙한 민주국가라 자처하면서도 실제로는 민주주의 덕목을 주요 행동 지침으로 삼지 않는 
이율배반에 빠져 있다. 선거로 다수당이 바뀌고 새 대통령이 나와도 집권 세력이 일을 추진하기 어렵다. 
소통을 통한 협치(協治)가 미덕이라지만 소수가 다수의 정책 집행을 가로막고 권력 지분을 협상하려 드는 것은 
민주주의 의회정치가 아니다. 
국가의 존립 자체를 부정하는 주장도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으로 그럴싸하게 포장된다. 
유권자의 관심만 끌 수 있다면 나랏돈을 탕진하고 안보를 위험에 빠뜨리는 결과를 마다하지 않는다. 
소수의 선동이 사회를 위태롭게 만들고 다수의 시민은 이를 언짢게 바라볼 뿐 효과적인 대응 수단을 찾지 못한다. 
책임에 인색한 방종이 득세하면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진다.

한반도, 동중국해,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중국의 기(氣) 싸움이 가중되는 가운데 
이들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한국이 표방해야 할 외교 노선은 무엇인가. 
사드(THAAD)를 배치하면 중국의 노여움을 살 것이라든지, 일본이 평화헌법을 개정하고 미국이 이를 지지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들은 외교의 중심 철학 없이 강대국 간 힘의 역학관계에 편의적으로 대응하는 사고의 습관에서 비롯된다. 
한·중 우호 협력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되 북한의 군사 위협으로부터 자유와 평화를 지켜내기 위한 노력을 오도(誤導)하지 
말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사를 책임 있게 청산하자고 역설해야 하지만 인권과 자유민주주의를 함께 
담금질해온 우방 관계를 경시해도 곤란하다.

스스로의 체제와 가치에 대한 자부심이 결여된 정치와 외교는 설득력과 일관성을 갖추기 어렵다. 
앞만 보고 여기까지 쉴 새 없이 달려온 한국이다. 더 성장하려면 그만큼 안으로 성숙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