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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The Column] 격차는 惡인가?

바람아님 2016. 7. 20. 09:04

(출처-조선일보 2016.07.18 현진권 자유경제원장)

격차를 사회惡으로 규정해버리면 모든 사람이 '빈곤의 평등' 얻게돼
경제 자유 추구하면서 나타난 자생적 질서의 결과가 격차
20대 국회가 감성적 접근 벗어나 본질 바로 보는 첫발 내디디길

현진권 자유경제원장 사진'격차'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뜨겁다. 
20대 국회 첫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통해 여야는 한목소리로 한국 사회의 문제점으로 격차의 심각성을 
꼽았다. 격차 해소를 위한 정책 수단에는 차이를 보였지만 이마저도 대동소이한 수준이다. 
결국 20대 국회의 방향타는 격차를 없애자는 한 방향으로 쏠릴 전망이다. 
정치권이 이런 길을 용감하게 가기 전에 두 가지 관점의 검토가 필요하다. 
첫째, '우리의 격차 수준이 심각한가' 둘째, '격차는 사회적으로 나쁜 악인가'이다. 
이에 대한 논리적 검증은 그간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번 기회에 '격차'의 본질에 대한 논의가 성숙된다면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격차는 다양한 분야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소득, 지역, 기업 크기 등 여러 분야의 격차 중 우리는 경제적 차원의 격차, 그중에서도 소득 격차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소득 격차는 심각한 수준인 양 묵시적으로 공감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소득 격차에 대한 진단은 감성적 차원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가슴 아픈 몇몇 경제적 어려움의 사례를 들어 격차 수준이 악화되었다고 평가하는 것은 비과학적이다. 
소득 격차는 전체 국민의 분포에 관한 정보이다. 
따라서 한국의 소득 격차를 판단하려면 통계적으로 엄밀한 표본추출과 표본분석을 통해야 한다.

소득 격차를 측정하는 대표적인 지표로 지니계수 등을 사용하지만, 절대수치를 통해 격차의 심각성을 판단할 수 있는 
잣대는 없다. 따라서 가장 쉽게 접근하는 방법이 같은 유형의 표본자료와 지표를 사용해서 국제 간 비교를 하는 것이다. 
OECD 등에선 소득 격차에 대한 다양한 연구 결과를 매년 발표한다. 
이 연구의 일반적 결론은 한국의 소득 격차는 미국보다 양호하지만, 유럽 국가들보다 심각하다는 것이다. 
즉 우리의 소득 격차는 전 세계와 비교할 때 중간 수준이라는 결론이다. 이런 과학적 실증 연구 결과를 두고도, 
우리 격차 수준이 심각하다고 과대 포장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정책 오류를 일으킨다.

소득 격차와 함께, 많이 사용되는 '양극화'란 용어도 문제다. 이는 근본적으로 선동적 용어다. 
우리 사회가 중류층 없이, 부자와 빈자로 양극화되었다는 인식을 심기 때문이다. 
양극화란 용어는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자료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졌고 이후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지칭하는 대표적인 
용어로 자리 잡았다. 우리보다 소득 격차가 훨씬 심각한 미국에서도 양극화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결국 양극화는 우리 소득 격차 수준을 평가하는 이성적 용어가 아니라 한국 사회를 대결 구도로 선동하는 기제일 뿐이다.

더욱 본질적인 문제로 격차는 과연 나쁜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해 정치권은 격차를 악으로 보고 이를 없애는 데 주력하는 듯하다. 
여러 입법을 통해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선이라는 인식이다. 
격차가 감성적으로 수긍하기 어렵더라도 경제 발전을 위한 순기능을 지녔다는 사실은 이성의 영역이다. 
개인이나 기업이 열심히 일하는 동기는 격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격차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선, 개인이나 기업은 열심히 일할 유인이 없다. 
경쟁을 통해 우위를 점유하려는 행동은 유아기 때도 나타나는 인간의 본성이다. 
격차를 가지는 시장경제 체제는 개인의 경제 자유를 최대한 허용함으로써, 개인뿐 아니라 사회도 함께 발전한다. 
만약 격차를 사회악으로 규정해 버리면, 결과적으로 모든 사람은 빈곤의 평등을 얻게 된다. 
이 명제는 20세기 인류가 사회주의 실험을 통해 얻은 역사적 교훈이다.

격차는 시장 질서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다. 
격차는 개인들이 경제 자유를 추구하면서 나타난, 자생적 질서의 결과일 뿐이다. 
누구도 미래의 격차를 예측할 수 없고, 바람직한 격차 수준을 제시할 수도 없다. 
정치권에서 격차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정책으로 완화하려 하면 할수록 경제 활성화는 멀어지고 가장 어려운 사람부터 
고통을 당하게 된다. 격차를 완화하겠다는 대표적 정책인 '경제 민주화'는 서민을 위한다는 감성적 포장을 하고 있지만 
사실 서민에게 경제적 고통을 주는 정책 방향이다.

정치권은 정책 목표를 격차 해소가 아닌 '빈곤 해소'에 맞춰야 한다. 
일반적으로 격차와 빈곤을 같은 정책 목표로 인식하지만, 전혀 다르다. 
격차를 해소하겠다던 사회주의 체제는 결국 빈곤만 늘려 왔다. 
격차가  있더라도 빈곤층이 없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다. 
격차 없는 사회를 만들려 하면 그 사회는 결국 모두가 빈곤한 사회로 추락해 버린다. 
반면 빈곤 해소를 정책 목표로 삼고 경제 자유를 높이면, 그 사회는 비록 격차는 존재하지만 굶주린 사람은 사라진다. 
20대 국회가 감성적 접근을 벗어나 '격차'의 본질을 바로 보는 어려운 첫발을 내딛는 국회가 되길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