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人文,社會

[김시덕의 종횡무진 인문학] 美·中 사이에서… 실리 챙기더라도 '국가의 품격' 지켜야

바람아님 2016. 7. 23. 17:59

(출처-조선일보 2016.07.23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

정재호 '중국의 부상과 한반도의 미래'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최근 한반도에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가 도입될 것이라고 발표됐다. 
어떤 사람들은 한반도가 미국과 중국 같은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최전선이 될 우려가 있으니 
사드를 배치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다른 사람들은 사드 배치보다는 한국이 핵무장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한다.

다소 엉뚱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필자는 사드 도입 뉴스를 접하면서 한국이 대만과 단교(斷交)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했던 1992년 당시를 떠올렸다. 많은 분이 여전히 기억하듯이, 한국은 건국 이후에
줄곧 우방이 되어준 대만에 대해 당시 큰 실례를 저질렀다. 
중국과 수교하는 것이 비록 시대적 추세와 한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도 
대만에 대한 결례는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최근 정재호 서울대 교수의 '중국의 부상과 한반도의 미래'를 다시 읽었다. 
이 책에는 한국과 대만의 단교 당시 관련자들의 회고가 실려 있다. 한국은 대만과의 오랜 의리를 지키지 못했다. 
6·25 전쟁 당시 중화인민공화국이 한국을 공격한 데 대해 사과를 받지 못했다. 
중국은 남북한을 동등하게 대해야 한다는 한국 측의 요구에 대해 어떤 공식적인 확인도 해주지 않았다. 
정 교수는 당시 한·중 수교 과정이나 결과에 대해 이렇게 냉정하게 평가한다.

정재호 '중국의 부상과 한반도의 미래'
중국의 부상과 한반도의 미래
저자 정재호/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1.08.15/ 페이지 492
도서관정보 -  349.12011-ㅈ468주/ [정독]인사자실(2동2층)

"중국과의 국교 정상화를 오랫동안 열망해 온 한국으로서는 대만과의 모든 조약을 파기하는 등 
대만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었다. 심지어 한국 정부는 한국에 소재한 대만의 모든 자산을 
중국에 이양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견을 달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은 중국으로부터 이에 대한 구체적인 보답을 별로 받지 못했다."

정 교수는 "중국과 같은 '분단 국가'이면서도 '분단 국가'로서의 특수성을 한국이 
수교 협상 과정에서 충분히 활용할 수 없었던 이유는 수교 자체에 대한 최고 통수권자의 
지나친 집착이 있었기 때문"이라고분석한다. 또한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우선순위를 둔 이래 한국은 
사실 대만을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다"고 냉정하게 평가한다.

대만과 단교할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이런 평가를 읽고 있으면, 
한국 국민으로서 참으로 낯이 뜨거워진다. 
당시에 원칙과 의리 대신에 '실리'를 취하는 데 급급했던 한국은 국가적 품격을 온전하게 지키는 데 성공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지금은 과연 얼마나 다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