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황종택의新온고지신] 개헌와한창(開軒臥閒敞)

바람아님 2016. 8. 5. 00:49
세계일보 2016.08.03. 21:07

“산속 석양은 홀연히 서쪽으로 지고, 연못의 달이 차츰 동쪽으로 솟아오르네(山光忽西落 池月漸東上)/
머리 풀어헤쳐 청량한 저녁바람 쐬고, 창문 열어젖혀 한가롭게 누웠네(散髮乘夕?開軒臥閒敞)/ …/
연잎은 바람결에 향기를 보내고, 댓잎 이슬은 맑은 소리 떨구네(荷風送香氣 竹露滴淸響)/
이런 생각에 친구가 그리워, 한밤중 꿈속에서까지 생각한다네.(感此懷故人 中宵勞夢想)” 

중국 한시 가운데 산수전원시(山水田園詩)의 대표작으로도 꼽히는 ‘여름날 남쪽 정자에서 신대(辛大:辛?, 大는 맏이를 지칭)를 그리워하며(夏日南亭懷辛大)’라는 시이다. 맹호연(孟浩然)이 은자 생활을 하던 시절 여름밤에 지음(知音), 곧 절친인 신악을 생각하며 지은 오언고시이다. 한여름 찌는 듯한 더위가 가신 밤, 머리를 풀어헤치고 창문도 열어젖힌 채 한가로이 누워 있자니 바람결에 연꽃 향기가 풍겨오고 댓잎에 맺힌 이슬이 떨어지는 청아한 소리가 들려온다. 문득 자신을 알아주던 친구가 그리운 마음은 더욱 깊어져만 간다. 섬세한 감성과 세속을 벗어난 듯한 청담(淸淡), 맑고 깨끗함이 묻어난다.

우리 한시를 보자. 남인으로서 조선후기 정계와 사상계를 이끌어간 인물인 미수 허목(許穆)의 시 ‘옳음도 없고 옳지 않음도 없음(無可無不可吟)’이다.

“한 번 가고 한 번 옴 늘 운수 따라/

모든 다름 처음엔 너나없으니/

이 일에 이 마음에 모두 이 이치/

누굴 옳지 않다 하고 누굴 옳다 할 수 있겠는가.(一往一來有常數 萬殊初無分物我 此事此心皆此理 孰爲無可孰爲可)”


서인의 거두 우암 송시열과 예악 논쟁을 치열하게 벌였지만, 시비 논쟁에서 벗어나 결국 서로 옳다는 걸림 없는 삶의 철학을 보여주고 있다. 여름 휴가철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적이고 바쁜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은 휴식을 취하고 싶어 한다. 휴가를 맞아 삶의 여유로움을 찾고, 잊고 지낸 사람들과의 인간관계 회복의 시간을 갖는 등 연꽃 향기 같은 마음을 지니고 다시 일상에 복귀해야 하겠다.


황종택 녹명문화연구원장


開軒臥閒敞: ‘여름날 창문을 열어젖히고 한가롭게 누웠네’라는 뜻.

開 열 개, 軒 집 헌, 臥 누울 와, 閒 한가할 한, 敞 시원할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