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강천석 칼럼] 중국도 시험대에 올랐다

바람아님 2016. 8. 6. 01:06
조선일보 : 2016.08.05 23:03

중국 수준 이 정도면 21세기 東北亞는 깜깜한 지뢰밭
强大國 진짜 얼굴 정확히 보고 同盟의 本質 꿰뚫어 보라

강천석 논설고문
강천석 논설고문
중국은 앞으로 어떻게 바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 속에 21세기 동북아(東北亞) 정세의 윤곽이 담겨 있다. 21세기 세계 질서의 모습도 이 밑그림을 기초로 그릴 수밖에 없다. 한국은 이 두 장의 지도(地圖) 위에서 나라를 독립·통일·번영의 길로 인도할 활로(活路)를 찾아야 한다.

중국 또한 시험대 위에 서 있다. 신생(新生) 강대국이 부딪히는 첫 고비는 커진 힘을 관리(管理)하는 능력을 보여주는 무대다. 여기서 미끄러지면 적대(敵對) 세력, 대항 세력에 둘러싸이고 나라의 운명이 바뀐다. 100년 전 독일이 그랬다. 독일의 강대국 무대 등장은 지금 중국처럼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최강(最强) 육군을 육성해 오스트리아,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거듭 승리함으로써 통일을 이룩했다.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경제력은 최강대국 영국을 앞질렀다.

통일을 일군 총리 비스마르크는 멀리 보고 몸을 낮췄다. 빛을 감추면서 은밀히 세력을 기르는 '독일판 도광양회(韜光養晦)'에 철저했다. 우선 해군력 증강(增强)을 자제해 해양 강국 영국이 위협을 느끼지 않도록 몸을 사렸다. 그때 세계의 화약고(火藥庫)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인 발칸반도였다. 비스마르크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동맹을 맺으면서 '동맹의 목적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발칸 문제로 외교적 탈선(脫線)을 하는 것을 막는 데 있다'고 공언(公言)해 인접 국가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렸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독일의 강대국 데뷔 무대는 1890년 비스마르크의 갑작스러운 해임(解任)으로 막을 내렸다. 그 후 독일은 해군력 증강에 몰두해 패권(覇權)국가 영국을 자극하고 국경을 마주한 나라들과 불필요한 자존심 경쟁을 벌이며 제 발로 세계 제1차대전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중국을 지켜보는 세계의 눈은 100년 전 독일을 지켜보던 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 지도부도 국가 전략을 수립하며 독일의 전례(前例)를 면밀히 검토했을 것이다.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 한국 배치 결정 이후의 중국 대응은 중국의 생각과 행동을 떠보는 리트머스 시험지 테스트와 비슷했다. 궁금증은 풀렸으나 뒷맛이 쓰다.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불편한 감정'은 이해가 간다. 강대국은 다른 강대국이 뒷마당을 들여다보는 것을 본능적으로 싫어한다. 자신의 능력과 의도(意圖)를 감추려 한다. 그래도 중국은 사드가 방어용이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중국이 사드 배치에 '불편한 심정'이라면 한국은 북한 핵과 미사일을 마주하며 '생존의 불안'을 느낀다. 중국이 한국 처지라면 중국은 한국처럼 곁눈질하지 않고 몇 배 담대(膽大)하게 판을 벌였을 것이다.

인민일보(人民日報)는 공산당 기관지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올 2월 인민일보·신화통신을 시찰하고 "당(党)의 의지를 실현하고 당의 주장을 반영하라"고 직접 지시하기도 했다. 이 신문이 지난달 29일부터 시작한 한국과 한국 대통령에 대한 공격과 비방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사드 배치가 (한국) 자신을 불태우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한국 영도인(領導人·대통령)은 소탐대실(小貪大失)로 나라를 최악의 상태에 빠뜨리지 않도록 하라' '(그렇지 않을 경우) 한국이 타격 목표가 될 것'이란 협박·공갈 수준으로 내달았다. 이것이 강대국 중국의 진짜 수준이라면 21세기 동북아 정세와 세계 질서는 지뢰(地雷)밭처럼 위태스럽고 동트기 전보다 더 깜깜해질 것이다.

한국에선 미국과 중국을 함께 일컬을 때 'G2'란 표현을 자주 쓴다. 2015년 미국 GDP는 18조달러, 중국은 11조4000억 달러다. 미국의 60% 수준이다. 군사력 특히 해군·공군 역량은 미국의 10~20% 정도로 추정된다. 이런 두 나라를 'G2'란 말로 묶는 표현에는 중국이 대국(大國)답게 처신하리라는 기대도 묻어 있다. 사드 사태는 그게 한국 혼자만의 기대일 뿐 '중국은 한참 멀었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신장 1m60㎝였던 단신(短身)의 거인(巨人) 덩샤오핑(鄧小平)의 유지(遺旨)가 떠오른다 "'도광양회'를 앞으로 100년 국가 영도(領導)지침으로 삼으라."

이 와중에 한국의 전 장관, 전 청와대 비서관, 현직 대학교수들이 중국 정부 기관지 지면(紙面) 위에서 "한국은 미국이 파놓은 동북아 전략의 함정에 빠졌다"고 연일 칼춤을 추고 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놀랄 일은 아니다. 한·중 2000년 역사의 고비마다 되풀이됐던 장면이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달리 있다. "한국은 강대국의 앞 얼굴과 뒷모습, 동맹(同盟)의 본질과 한계를 꿰뚫어 보고 있는가." 지도자와 국민이 함께 대답해야 한다. 한국은 강대국 절벽에 둘러싸인 나라다. 나라의 지도자가 어리석으면 '당장', 국민이 어리석으면 '언젠가 반드시' 국가가 존망(存亡)의 낭떠러지 앞에 서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