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레이더P] [조한규의 맥] 사드와 중국, 그리고 대선

바람아님 2016. 8. 5. 00:14
매일경제 2016.08.04. 14:00 

중국의 경제·문화 보복 가능성 속에 한·중 정상 만남 주목
중국이 최근 한국인 상용비자 발급을 제한한 것은 서막에 불과하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경제·문화 보복조치가 임박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한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현재 한국에 대한 경제·문화 보복조치를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있다고 한다. 이 시나리오에는 보복조치의 다양한 리스트가 담겨 있다. 한국인의 상용비자 발급 전면 중단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다. 한국 콘텐츠의 방영과 신규 제작 중단을 비롯해 한국 연예인의 비자 발급 제한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머지않아 한·중 간 경제·문화교류가 최악의 단계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만일 중국이 한국과의 교류를 단계적으로 중단하다면 그것은 말할 나위도 없이 우리 정부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 결정에 대응한 보복이다. 외교소식통은 한국에 대한 중국의 보복 추진 배경에 대해 세 가지로 요약해 전했다.


"첫째로 한국은 사드 배치로 동북아에서 미·중·러의 균형을 깨고 대결국면으로 몰아가고 있다. 둘째로 한국은 사드 배치로 휴전이라는 '전쟁 수면 상태'를 깨워 전쟁 위험을 높이고 있다. 셋째로 중국의 이익을 무시하는 한국에 대해 엄중한 징벌과 제재를 하지 않으면 앞으로 주변국가의 중국 이익에 대한 도전이 더욱 거세질 것이다. 그래서 중국은 반드시 이번 기회에 한국에 대해 경제·문화 보복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보복조치를 취한다는 것은 중국의 주변국 외교정책인 '친성혜용(親誠惠容)'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말해준다. '친성혜용'은 '친밀, 성실, 혜택, 포용'을 의미한다. 친하게 지내며 성의를 다하고 혜택을 주고 포용하며 지낸다는 뜻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10월 '친성혜용'을 처음 거론한 이후 중국의 외교정책 이념이 됐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는 3일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해 "한국의 지도자(領導人·박근혜 대통령)는 나라 전체를 최악의 상황에 빠뜨리지 않도록 신중하게 판단하라"고 했다. 도가 넘는 압박이다. 불쾌하지만 그 본질을 봐야 한다. 문제는 사드 배치 결정 철회를 압박하는 중국의 '간섭'이 아니라, 중국 언론이 그런 식의 보도를 계속할 경우 중국 인민들이 '혐한의식(嫌韓意識)'을 갖게 된다는 데 있다. 그렇게 되면 중국 유커(遊客·관광객)들의 한국관광이 급격히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연예인들도 철수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중국은 한국형 미사일방어시스템은 인정한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사드는 반대한다. 중국 측은 우회적인 외교채널을 통해 한국 측에 '사드 배치를 미루거나 사드에서 레이더를 빼라'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 미사일 탄두의 비행을 추적할 수 있는 'TPY-2 레이더' 대신 '그린파인(Green Pine)레이더'를 설치하라는 얘기다. 마치 조선시대에서 본 듯한 데자뷔(기시감)를 느끼게 한다.


사드는 북한 미사일을 레이더로 탐지해 요격하는 방어용 무기체계다.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이 엄존하는 상황에서 도입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동북아 국제정치, 한·미관계, 한·중관계, 성주 군민과 정치권 일각의 반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사드는 안보 현안을 넘어 정치외교 현안이 된 것이다. 정부의 외교력, 청와대의 정치력이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경북 지역 의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지역 민심을 청취하는 것도 사드가 정치화됐다는 방증이다.


'사드의 정치화'는 2017년 대선을 겨냥한다. 대권주자들이 사드의 정치적 득실을 어떻게 계산하는가에 따라 사드 배치의 최종 향배가 결정될 수 있다. 중국이 보복조치를 단행할 경우 민심은 극도로 악화될 수 있다. 가뜩이나 개성공단 폐쇄로 서울 동대문·남대문 시장이 타격을 입었는데 유커들마저 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면세점과 호텔, 백화점의 매출 또한 막대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한국 경제가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결국 사드 배치는 차기 대선의 최대 쟁점이 될 것이다.

정부는 물론 이런 문제점을 다각적으로 검토했을 것이다. 경제보다 안보 우선의 정책을 선택하기까지 많은 고심을 했을 것이다. 이해는 간다. 그리고 아직 시간도 있다.


박 대통령은 9월 2일부터 3일까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제2차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사드의 한반도 배치 결정 등을 둘러싼 동북아 정세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러시아 정부 주관의 이번 동방경제포럼에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도 참석한다고 한다. '박근혜-시진핑 회담'이 주목된다. 여기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결론을 내려야 한다.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에서 '知止不殆(지지불태) 가이장구(可以長久)'라고 했다.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아 장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드 문제의 답은 여기에 있다.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전 MBN 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