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발언대] 후진적 국립묘지 신분 차별 없애라

바람아님 2016. 8. 3. 23:54
조선일보 : 2016.08.03 06:13

장병한 예비역 육군 중령
서민들은 죽은 후에 묻힐 작은 땅 한 조각 구하지 못해 화장해서 유골을 산이나 강에 뿌리는 경우가 많다. 반면 돈이나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거창한 장례식에 호화롭게 단장한 묘지에 묻히곤 한다. 인간이 죽어서까지 차별을 받아서야 되겠는가. 현재 법적으로 사설 묘지가 허용되고 있으니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법 개정을 통해 개선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국립묘지다. 세금으로 국가가 설치하고 관리하는 국립묘지가 신분에 차별을 두고 있으니 민주국가라고 할 수 있는가. 영관 이하 장병은 화장하여 1평 땅에 평장하고 비석만 세운다. 하지만 장군은 8평, 전직 대통령은 80평짜리 넓은 묘역에 매장하고 봉분까지 만들어준다. 고향 땅에 묻히겠다고 했던 어느 대통령의 묘역은 1000평에 이르고 마을 전체가 사실상 성역화돼 국가보존묘역으로 관리되고 있다. 모두 국민 세금으로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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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동 국립묘지 무연고 묘역. /조선일보 DB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는 장군 및 사병 차별 없이 1.36평 묘역에 들어오는 순서대로 평장한다. 케네디 대통령도 이곳에 묻혀 있는데 20평 묘역에 부부와 죽은 두 자녀, 그리고 동생 로버트 케네디까지 묻혔으며 아무런 치장 없이 묘비에 이름만 새겼다. 독일 통일의 기반을 닦은 빌리 브란트 총리는 시골 공원묘지에 일반인과 같이 묻혀 있으며, 이름만 새긴 비석 앞에 1평 정도 잔디를 심어 놓았을 뿐이다. 독일 점령하에 있던 프랑스를 구한 영웅 드골 대통령 역시 유언에 따라 조촐한 가족장을 치른 후 고향의 공동묘지에 묻혔다. 그런가 하면 중국의 '작은 거인' 등소평은 화장해서 유골을 바다에 뿌리라고 유언했고 그렇게 실행됐다.

외국 지도자들의 행적은 이렇게 사후에도 빛나고 감동을 주는 반면 우리나라 지도자였던 사람들의 행적은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 그것이 그분들의 뜻이었는가, 아니면 추종자들이 과잉 충성으로 오히려 그들을 욕되게 하는 것인가. 국립묘지에 묻힌 전직 대통령의 자손이 묘역을 줄이고, 장군도 일반 장병과 똑같이 묘지를 만들어 달라고 정부에 청원한다면 과연 '불효'이고 '이변'인 것일까. 이것이 명당자리에 만든 호화 분묘에 묻히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고 국민적 존경을 받을 일이 아닐까.

우리나라도 이제 망국병 풍수지리설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장묘 문화에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최고위층에서부터 솔선수범해야 성공할 수 있다.
한국전에 참전중 20세의 나이로 사망한 잭타이 일병의 장례식이 거행된 2008년 5월 19일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의 모습. 잭 타이 일병은 미군 당국의 2002년 북한 유해발굴 작업으로 58년 만에 조국에 묻히게 됐다. /조선일보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