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6-08-15 03:00:00
▷사랑 때문에 항일운동 최전선에서 잠시 벗어났던 이 승려는 나중에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운암 김성숙이다. 법명은 태허. 18세에 출가한 그는 25세이던 1923년 불교 유학생으로 중국 베이징에 건너간 직후 의열단에 가담하면서 본격적인 항일투쟁에 나선다. 김산의 스승이자 동지로서 혁명가의 우정을 쌓은 것도 이 무렵. 광둥(廣東)에 있는 중산대에서는 사회과학을 공부해 이론적 기반을 갖추게 된다.
▷운암은 중산대 최초의 여대생인 두쥔후이(杜君慧)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조국에 아내와 1남 1녀가 있었지만 사실상 첫사랑이었다. 김산이 가장 친한 독립운동 동지를 빼앗겼다는 질투심을 느끼게 할 정도였다. 두쥔후이도 집안의 반대로 쫓기듯이 일본 유학을 떠났으나 3개월 만에 운암에게 돌아올 정도로 애정이 깊었다. 광둥 코뮌 탄압 때 운암은 연인 집에 숨어 지냈고 결국 1929년 결혼했다. 운암은 이 시기에 평생 한 번뿐인 안온한 생활을 맛보며 3남을 두었다.
▷두쥔후이는 남편을 따라 항일 선전활동에 적극 나섰고 임시정부 외무부 요원으로도 활약했다. 자신을 ‘조선의 딸’이라며 독립운동가 후원을 호소했으며 조선 여성들을 같은 동포로 여겼다. 광복 71주년을 맞아 두쥔후이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운암과 국적이 다른 부인이 함께 건국훈장을 추서받은 매우 드문 사례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때문에 한중 관계가 껄끄러워진 요즘 운암과 두쥔후이 부부처럼 두 나라가 힘을 합쳐 일본과 싸웠던 시절을 회고해 본다.
이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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