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와 미녀의 도시로 유명한 항저우는 왕소군, 초선, 양귀비와 더불어 중국의 4대 미녀 중 한명인 서시(西施)를 낳은 곳이다. 춘추전국시대 월나라 시골 땔감나무 장수의 딸로 태어난 서시는 그 아름다움 때문에 나중에 수도로 뽑혀 가게 된다. 궁전에 들어가는 서시의 얼굴을 보기 위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서시가 궁전까지 들어가는데 사흘이나 걸릴 정도였다. 물고기가 그녀의 미모에 반해 헤엄치는 걸 잊고 바라보다 그대로 가라 앉았다고 하니 과장이 심한 중국 표현을 감안하더라도 그녀의 미모가 어느 정도였을 지 짐작이 간다. 월나라는 서시를 동원한 미인계를 써 오나라를 멸망시키는데 이와 관련해 나온 사자성어가 바로 와신상담(臥薪嘗膽)이다.
그 동안 겪은 경험도 있고 해서 인지 영국이 중국의 ‘미인계’ 경계령을 내렸다고 한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의 보도에 따르면 영국 보안당국이 G20 정상 회의에 참석한 테레사 메이 총리를 수행하는 총리실 관리들에게 중국 스파이들의 미인계를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머무는 호텔 방이 도청되거나 감시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의령을 내렸다. 텔레그래프는 한 익명의 정부 관리를 인용해 영국 보안당국으로부터 "타인에게 나체를 보이는 것이 불편하다면 이부자리 안에서 옷을 갈아입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이야기까지 전했다. ▶ 원문 참고
영국 정부가 이처럼 중국의 미인계에 신경을 쓰는 것은 과거의 쓰라린 경험 때문이다. 2008년 중국을 방문한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의 수행 관리가 중국 정보 요원의 미인계에 넘어가는 바람에 고급 정보가 담긴 휴대전화와 서류를 분실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고든 전 총리의 보좌관을 지낸 맥브라이드가 2013년 펴낸 회고록을 통해 알려진 바에 의하면 미모의 중국 여성을 만나 호텔로 갔던 해당 관리는 일어나보니 여성은 사라지고, 서류가방에 있던 휴대전화와 서류가 분실됐다는 것이다.
2013년에는 미국 군 장교가 중국인 여성의 미인계에 걸려 국가 안보와 기밀 정보를 누설하는 사건이 발생해 한동안 시끄러웠다. 미군 태평양 사령부 벤자민 비숍 조달 담당 장교가 32살이나 연하인 27살 중국인 여성에게 푹 빠져 넘긴 기밀 정보는 미국 핵무기 현황과 미사일 대응 기술, 태평양 사령부 작전 계획 등 특급 정보들로 밝혀졌다. 전형적인 미인계에 당한 경우로 볼 수 있다.
영국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중국 국영기업이 컨소시엄에 참여한 영국 남부 힝클리 포인트 원자력발전 건설 프로젝트에 대한 승인을 미뤘다. 양국의 견제와 긴장이 높아진 상태에서 보안에 신경을 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영국뿐만 아니라 G20 정상 회의에 참가하는 다른 나라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항저우는 월(越)나라와 송(宋)나라의 천년고도로 풍광이 그림처럼 아름다워 “쑤저우에서 낳아, 항저우에서 살고, 광저우에서 먹는 게 소원”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이다. 항저우 서쪽에 있는 호수 시후(西湖)는 백거이와 소동파 등 중국 문인들이 뱃놀이를 하며 역사에 남을 시를 지을 정도로 사랑을 받았으며 세계문화유산으로까지 등재될 정도로 유명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항저우를 배경으로 G20 정상 회의 막후에서 중국과 참가국들이 007 첩보 영화에서 나올 만한 스파이 대결을 벌이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G20 관련 공식적인 뉴스 이면에 또 어떤 사건들이 일어났을까 하는 뒷이야기에 기대가 된다.
이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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