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日常 ·健康

[일사일언] 가을밤 전어의 유혹

바람아님 2016. 9. 22. 09:05

(조선일보 2016.09.22 따루 살미넨·작가 겸 방송인)


따루 살미넨·작가 겸 방송인한국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서 그런지 생선구이 종류가 참 많다. 
도루묵, 우럭, 꽁치, 삼치, 볼락, 고등어, 서대, 조기, 가자미, 금태…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가을 별미, 전어구이도 빼놓을 수 없다. 
지금 아버지 병구완을 하러 핀란드에 와 있는데 친구들이 SNS에 하루가 멀다 하고 전어 사진을 
올려대는 통에 한국에 돌아와 전어를 먹고 싶은 마음을 가라앉히느라 괴로울 정도다.

사실 어릴 때 연어를 먹다가 가시가 목에 걸려서 죽을 뻔했던 기억 때문에 전어를 오랫동안 잘 먹지 못했다.
잔가시가 많고, 그 가시를 모두 발라내면 먹을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국 친구들은 전어를 뼈째 먹어야 한다고 했다. 잉? 통째로 먹으라고? 나는 죽기 싫었다. 
한동안 한국 사람들이 전어를 오독오독 씹어 먹는 모습은 마냥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그러던 어느 늦은 가을밤, 마지막으로 딱 한잔만 하자며 찾은 술집에서 전어구이를 주문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은빛 전어가 그날따라 너무나 맛깔스럽게 보였다. 
술기운을 빌려 없던 용기를 냈다.
한 마리 집어 들고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대가리부터 씹기 시작했다. 
이게 웬일. 잔가시를 발라먹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차원의 고소함을 전어에서 느꼈다. 
바삭바삭한 느낌도 좋았고, 전어 뼈에서 나오는 단맛도 입안에 오래 남았다. 
구이를 다 먹고 나서는 내친김에 전어회까지 주문했다. 감칠맛에 반해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전어는 날로 먹든, 구워서 먹든 맛이 항상 기가 막힌다. 
가을까지 기다리기 어려우면 7월 말에 열리는 삼천포항 자연산 전어 축제에 가는 것도 좋다. 
구수한 사투리를 들으면서 조금 빨리 고소한 전어를 맛볼 기회다.

아직도 큰 놈은 통째로 먹기가 조금 어려워 손바닥만 한 작은 전어를 찾는다. 
내 손바닥보다 작은 전어는 만나기 어려운데 운 좋게 하남 미사리 수산 시장에서 찾아 먹었던 전어의 맛과 향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전어 굽는 냄새는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말에 100% 공감한다. 
나 같아도 돌아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