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09.23 윤형준 사회부 기자)
장한 아들을 둔 뿌듯함이 크다 한들 단장(斷腸)의 슬픔에 비할까.
불이 난 건물에서 가장 먼저 탈출하고도 이웃을 구하고 숨진 고(故) 안치범(28)씨의 부모는 21일
빈소에서 여러 차례 주저앉았다. 그을리고 상처 난 아들의 손 사진을 보며 안씨의 어머니는 영정을
붙잡고 "얼마나 아팠을까. 내 새끼"라며 오열했다. 치범씨가 공익근무요원으로 일하던 시절 도움을
받았던 '장애인 제자'들이 휠체어를 타고 빈소를 찾았을 때 유족들은 깜짝 놀랐다.
안씨의 아버지는 "내 자식의 선행을 전혀 몰랐다"고 했다.
요즘 대한민국 기준으로 보면, 숨진 안씨는 '엄친아'는 아니었다. 오히려 느림보에 가까웠다.
삼수 끝에 지방 한 대학에 들어갔고, 졸업도 못 했다.
전공과는 거리가 먼 직업을 진로로 택해 취업 준비만 2년 넘게 하고 있었다.
이런 아들이 남몰래 베푸는 삶을 살았던 사실을 부모도 까맣게 몰랐던 것이다. 안씨의 어머니는
"아들이 누군가를 구하다 숨진 것 같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설마 그랬으려고"라며 믿지 않았다고 한다.
안씨의 선행은 그가 숨진 뒤에야 하나씩 드러났다. 안씨는 취업 준비를 하면서도 꾸준히 장애인들을 도왔다고 한다.
3년 전 공익 근무를 하며 잠깐 만난 '제자'들을 최근까지도 챙겼다.
당시 그와 인연을 맺은 한 학생은 "불이 나기 3일 전에도 선생님이 '잘 살고 있느냐'며 먼저 연락해 왔다"고 했다.
안씨의 동년배들이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챙기며 빠르게 나아갈 때 안씨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변을 챙기던
'느림보'였던 셈이다.
그런 안씨였지만 자신이 세 들어 살던 건물에 화재가 났을 때는 누구보다 빨랐다.
불이 난 건물에 다시 들어가 4명의 이웃과 함께 나왔다 가도 안씨는 또 불길 속으로 들어갔다.
죽음을 무릅쓰고 사지(死地)로 뛰어든 건 안씨뿐이었다.
발인식이 엄수된 22일, 젊은 의인(義人)은 유족의 눈물을 뒤로하고 영영 떠났다.
28세 취업 준비생이었던 '느림보 청년'이 불이 난 건물에서 방마다 눌렀을 초인종은
모두가 자기 살길을 찾느라 바쁜 '각자도생(各自圖生)' 사회에 대한 묵직한 경고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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