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09.24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서울을 떠나며
숲 건너에서 저녁 방아 찧는 소리 들려온다. | 發洛城 寒馬犯晨鐘(한마범신종)
難忘紫閣峯(난망자각봉)
秋色醉山容(추색취산용)
隔林聽暮舂(격림청모용) |
경상도 상주 선비 경현(警弦) 강세진(姜世晉·1717~1786)이 서울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지었다.
서울에서 살다가 십대 말엽 경상도로 낙향한 뒤 때때로 과거를 보거나 친구를 만나러 상경하였다.
성문을 여는 종소리를 들으며 말을 타고 남대문 밖을 나오니 이슬은 옷을 적신다.
성문과 멀어지며 청파동 냇물이랑 남산 자각봉과도 작별을 고했다.
정든 추억이 서린 곳들이라 마음이 처연하다.
한강을 건너고 과천을 지나가다 보니 길가의 장승에 석양빛이 비껴 쬐어 저녁이니 쉬어 가라 말해주는 듯하다.
보이는 산마다 단풍이 붉게 물들어 술에 취한 듯하다.
숲 저편에서 방아 찧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어름에는 주막이 있을 테니 서둘러서 과객의 고단한 몸과 마음을 눕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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