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노트북을 열며] 북핵만 보이는 한국

바람아님 2016. 10. 3. 23:41
중앙일보 2016.10.03. 00:04

한국의 대북정책은 온통 북핵에만 꽂혀 있다. 대화·협력이라는 말을 꺼냈다가는 경을 칠 지경이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과 생각이 다른 공직자들은 할 말이 있어도 입을 다물고 있다. 괜히 자기 생각을 말했다가는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그래서인지 한국 정부의 눈에는 ‘북한=북핵’만 보인다. 북한과 대화할 가치도 없다고 결정한 지 이미 오래됐고 제재와 압박으로 승부를 걸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오는 5~7일 평양에서 ‘북한에서의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주제로 국제학술회의가 열린다. 캐나다-북한지식교류협력프로그램이 북한 내각의 국토환경보호성과 공동으로 행사를 주최한다. 이 프로그램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UBC)이 2011년부터 시작한 북한과의 학술교류 행사다. 올해는 유엔 기구· 북미· 유럽· 아시아의 8개국에서 전문가 16명이 참가한다. 북한도 환경전문가 12명을 포함해 관료·학자 등 130여 명을 내보낸다.


한국에서 보면 대단한 행사는 아니다. 정부기관과 해외 전문가들이 모여 토론하는 흔한 회의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5차 핵실험으로 대북 제재에 혈안이 돼 있는 상황에서 눈치 없는 행사라고 폄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짧은 생각이다. 이번 학술회의에서 다루는 내용은 기후변화· 산림경영· 폐기물 처리· 물자원 관리 등 환경과 관련된 글로벌 이슈들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환경은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먹고 살기도 빠듯한 북한이 이제는 글로벌 이슈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겠다는 의미다.


북한은 최근 함경북도 회령시· 무산군 등지에서 큰 수해 피해를 보았다. 유엔 인도주의 업무조정국(OCHA)의 보고서에 따르면 인명피해는 200여 명에 달했고 주택과 건물 등 5만여 채가 파손됐다. 이번 수해는 북한이 환경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그래서 북한은 해외 전문가들을 초청해 그들에게서 배우겠다는 것이다.


한국이 북핵에만 꽂혀 있는 동안 해외 기관들은 글로벌 이슈들을 북한에 가르치고 그들의 손을 잡아 주고 있다. 캐나다-북한지식교류협력프로그램의 소장인 박경애 UBC 교수는 “환경문제는 국경이 없으며 북한이 이번에 여러 나라 학자들을 만나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의미 있고 생산적인 의견을 교환함으로써 국제사회와 협력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때 한국 사회에 유행했던 ‘통일대박’ ‘통일준비’ 등 화려했던 말들은 온데간데없고 지금은 북핵만 남아 있다. 한국이 북핵에만 매달려 다른 이슈들을 외면할 때 해외 기관들이 그 자리를 독차지하고 있다. 현장 연구를 하지 못하는 한국의 북한 연구도 이제는 그들의 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우리는 통일이 되면 북한이 우리의 독무대가 될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플레이어들은 많다. 북핵만 쳐다보지 말고 다른 것도 쳐다봐야 한다. 다 뺏기기 전에.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북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