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사진 왼쪽), 리커창(李克强, 오른쪽)
첫 등판은 1946년 5월로 마오쩌둥(毛澤東)의 공산당과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이 대륙의 패권을 놓고 맞붙던 국공내전(國共內戰) 기간이었다.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때 인민일보에 첫선을 보인 권위인사는 공산당의 1인자 마오쩌둥이었다. 여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인민일보의 권위인사는 정말로 ‘권위’가 넘치는 인물이다. 이번에 나타난 권위인사는 시진핑의 경제 책사인 류허(劉鶴) 중앙재경영도소조판공실 주임으로 추정되고 있다.문제는 인터뷰 내용이다. 1개 면 이상 되는 장문의 인터뷰를 통해 이 권위인사는 리커창 총리 중심으로 펼쳐지는 경제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우리나라의 경제 잠재력은 충분하다. 부양정책을 쓰지 않더라도 (발전) 속도가 그렇게 떨어지지는 않는다.” 이는 올해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대규모로 돈을 풀어 경기를 살리려 안간힘을 쓰는 리커창 노선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이 권위인사는 또 “일부 낙관론자가 현재의 중국 경제 상황을 U자형 혹은 V자형으로 보고 있지만 실제론 L자형 단계로 들어섰다”며 “일부 경제지표가 좋아졌다고 희희낙락할 것도 아니고, 또 나빠졌다고 당황해할 것도 아니다”고 분석했다. 이 또한 리커창이 보는 중국 경제 상황과는 다른 판단이다. 권위인사가 강조하고자 한 것은 리커창의 단기적인 경기 부양정책에 반대하며 지금은 장기적인 체질 개선을 위해 힘을 쏟을 때라는 점이었다.이에 현대판 ‘남원-북원의 다툼’이란 말이 나왔다. 시진핑과 류허 등이 장악한 당 중앙은 중난하이(中南海) 남쪽에 자리하고 있는 데 반해 리커창이 수장으로 있는 국무원은 북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간에서 권위인사가 인민일보에 등장한 것은 리커창에 대한 공개 비판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자 중국 관방을 배경으로 하는 인터넷 매체들이 그 정도 의견 차이는 늘 있는 것이라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그러나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시진핑과 리커창의 경쟁은 뿌리가 깊다. 1990년대 이래 중국에선 당 총서기가 업무 전반을 관장한다면 경제는 총리의 몫으로 여겨졌다. 집단지도체제에 의한 업무 분담의 결과다. 그러나 시진핑은 집권 후 ‘1인 체제’ 구축에 힘을 쏟았다. 마침내 2013년 말부터는 리커창을 밀어내고 경제 대권을 틀어쥐었다는 말이 나왔다. 시진핑이 중앙재경영도소조 조장이 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