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에서 ‘환상’은 현실의 날카로운 모서리에 부딪쳐 피 흘리는 정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어기제로 분류된다. ‘몽상’이나 ‘백일몽’ 역시 현실의 어려움으로부터 도피해 숨는 대표적인 장소다. 소설가가 된 후 알아차린 사실은 유년기부터 사용해 온 방어기제가 그대로 직업 도구가 됐다는 점이었다. ‘망상’은 온전한 현실 검증력이 결여된 인지 왜곡 상태를 의미한다. 상상력을 사용하는 직업이 환상과 망상 기능을 은밀히 강화시켜 마침내 정신분석을 받는 지점까지 이어진 게 아닌가 의심한 적이 있다.
상상력을 사용하는 직업은 위험한 줄타기 같은 데가 있다. 상상이 잠깐 한눈팔면 영적 스승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환상처럼. 상상이 욕심내면 사이비한 길이 열렸다, 몽상처럼. 의존성을 끊어내지 못했다면 그 길을 한참 걸었을지도 모른다. 잘못됐음을 알아차린 후 제자리로 돌아오기 위해선 혈투 같은 자기와의 싸움이 필요했다. 이후 내게는 정신 작용의 결과물을 검증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것이 현실 원칙에 부합되는가, 공동체의 질서와 통념에 수용될 만한가, 인류의 보편적 선에 부합되는가, 세 차원에서 점검한다. 칼럼 주제와 거리가 먼 이야기를, 오늘 아침, 어떤 상상력에 이끌려 쓰고 있는지 또다시 점검해 봐야겠다.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