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6.10.22 00:01
40대인 지인 남성은 3년째 담배를 끊는 중이다. 안부와 함께 금연 여부를 물으면 진지하게 답한다. “열심히 끊고 있습니다.” 처음에 그 표현은 공허한 의지나 자기 위안처럼 들렸다. 3년째 같은 말을 듣다 보니 한순간 그것이 금연이 아니라 심리 발달의 문제와 연관돼 있음이 짐작되었다. 3년에 걸쳐 천천히, 점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금연은 그의 정신적 성숙 과정과 동일한 궤적에서 진행되는 작업이 아닐까 싶었다.담배 끊기가 왜 어려울까. 그 질문은 우리가 왜 심리적 어른이 되기 어려울까 하는 의문과 맞닿아 있다. 심리학의 여러 발달이론 중 안나 프로이트의 ‘발달 노선’이라는 개념이 있다. “개인의 발달은 의존성에서 정서적 독립과 성숙한 대상관계로 나아가는 경향, 신체 관리의 무책임에서 책임감으로 나아가는 경향, 자신의 몸에서 장난감으로, 놀이에서 일로 관심이 확장되는 경향이 있다.” 발달 노선 관점에서 볼 때 담배는 ‘의존성, 신체 관리의 무책임, 장난감에 대한 관심’ 단계에 위치하는 상징물이다. 질문은 ‘어른 되기가 왜 어려울까’로 변환된다. 그 답변에는 우리 사회의 특수성이 감안돼야 한다. 특별한 현대사를 관통해 오면서 다양한 심리적 어려움을 떠안고도 그 해결에 무관심했던 우리는 그동안 회피해온 모든 문제가 자녀들의 내면으로 흘러들어갔음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자녀의 문제에 대해 ‘이상한 아이’로 취급할 뿐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여기는 부모의 관점이 여전히 존재하는 광경을 목격한다.어른이 되지 못한 사람은 우선 부모에게서 배우지 못했다. 통제하고 지배하는 방식의 양육을 경험하는 아이는 부모의 불안한 내면을 흡수한다. 지지하고 이끌어주는 어른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지지하고 성장시키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둘째, 놀이에서 배우지 못했다. 성장기에 공부만 강요당해 뛰어놀며 배워야 하는 감정조절 능력, 문제해결 능력, 갈등조절 능력 등을 습득하지 못했다.
셋째, 좌절에서 배우지 못했다. 자녀가 실패나 고통을 겪지 않기 바라며 매사를 준비해주는 부모는 아이가 경험에서 배울 기회를 박탈한다. 원시 부족이든 현대 사회든 성인식의 핵심은 좌절을 경험하고 거기서 회복되는 과정을 체득하게 하는 것이다.
일찍이 정신분석학은 남자들의 심리 회복을 위해 강요된 ‘남성다움’을 벗고 내면의 여성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해법을 내놓았다. 그것도 ‘남성답다’고 일컬어지는 어른의 세계로 진입한 이후의 일이다.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