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6-11-02 03:00:00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수리하다 보니, 비가 샌 지 오래된 곳은 서까래·추녀·기둥·들보가 모두 썩어서 못 쓰게 되었으므로 경비가 많이 들었고, 한 번밖에 비를 맞지 않은 곳은 재목들이 모두 완전하여 다시 쓸 수 있었기 때문에 경비가 적게 들었다.
고려 중기의 문인 이규보(李奎報·1168∼1241) 선생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실린 ‘집을 수리하는 것에 대한 설’(理屋說)입니다. 집에 비가 샜는데 바로 고치지 않다가 나중에 더 큰 비용이 들었습니다. 완전히 무너지거나 사람이 다치기 전에 수리할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요.
이것을 보고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는 사람의 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아닌가. 잘못을 알고서도 곧바로 고치지 않는다면 그 몸을 망치는 것이 나무가 썩어서 못 쓰게 되는 것보다 더 심할 것이요, 잘못이 있더라도 고치기를 꺼리지 않는다면 다시 좋은 사람이 되는 데 문제가 없는 것이 집의 재목을 다시 쓸 수 있는 것보다 더할 것이다(知非而不遽改, 則其敗己, 不시若木之朽腐不用. 過勿憚改, 則未害復爲善人, 不시若屋材可復用).
잘못을 바로 고치지 않고 놔두다 보면 그 잘못은 눈덩이 구르듯 점점 커지고 반복되는 속도도 빨라지는 법입니다. 그러니 잘못을 알면 바로 고쳐야 착한 사람으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있다는 말씀. 선생은 낡은 집을 수리하다가 사람 고치는 도를 깨치신 셈입니다. 이만하면 하실 말씀은 다 하신 것 같은데 선생은 여기에 한 말씀 더 보탭니다. 그런데 수백 년 전의 말씀이 여전히 진리입니다. 그 사실이 무섭기도 하고 슬프기도 합니다.
나라의 정치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모든 일에 있어서, 백성에게 심한 해가 될 것을 머뭇거리고 개혁하지 않다가, 백성이 못 살게 되고 나라가 위태하게 된 뒤에 급히 고치려 한다면 붙잡아 일으키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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