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1.07 유희경·시인·서점 '위트 앤 시니컬' 대표)
나는 서점 주인이다. 그렇게 된 지는 대략 4개월쯤 됐다.
어쩌다 서점 주인이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너무 많이 떠들어서, 이젠 더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
대개의 일이 그렇듯 어쩌다 그렇게 되었고, 지금까지는 무척 만족스럽다는 얘기만 적어두기로 한다.
우리 서점에는 시집만 있다. 그러니까 시집 서점이다. 그래서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 고객층이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개 식물성이다. 조용하고, 온순하며, 침착하다.
그래서 우리 서점에는 소위 '진상'이라고 불리는 고객이 거의 없다.
가만히 찾아와 뒤적이다가 계산을 하고 서점을 떠난다.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가는 고객도 많다.
마치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는 듯, 개업 선물로 받은 것은 죄 화분이다.
개업 선물로 화분을 선물하는 것이 상례라고 해도 이건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받았다.
좀 난감했는데, 나는 식물이라는 것을 키워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소중한 사람들이 건네는 화분을 안 받을 수도 없고, 받자니 관리를 잘못해서 전부 죽게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몰래, 식물을 키울 줄 아는 사람 손에 들려 보내기도 했다.
그편이 둘 다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렇지만 다음번 찾아왔을 때 그 화분이 보이지 않으면 섭섭하겠다는 생각이 미치자, 더 떠나보낼 수도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잘 키워보자. 하나하나 인터넷 검색을 해서 물을 주는 주기를 확인하고 표를 만들었다.
화분마다 내가 사랑하는 시인들의 이름도 붙여주었다.
애정이 생겼다. 아니 애지중지하게 되었다.
아침, 출근을 해서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커피를 내리는 일도 음악을 켜 두는 일도 아니다.
화분 하나하나에 눈을 맞춰가며 인사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어떤 아이가 목마를 때가 되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가만히 기다리는, 조용하게 골몰하는 방법을 이들에게 배운다.
막막해질 때, 공연히 심란해질 때 눈길이 창가에 가는 것이 이젠 좀 당연하다.
이 아이들이 오래오래 여기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이 아이들과 오래오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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