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전면에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후보의 대선 승리로, 냉전을 거치며 지난 70여년간 유럽을 지배하는 안보질서로 자리매김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은 창설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트럼프는 동맹 연루(連累) 위험을 피하기 위해 신(新)고립주의적 외교정책을 내세우는 한편 전폭적인 친러시아적 행보를 펼쳐왔다. 이에 나토라는 집단안보 체제에 의존하고 있는 유럽으로서는 미국이 나토 의무를 내팽개치는 방기(放棄) 상태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가 고조됐다. 동맹이 가진 연루와 방기의 딜레마가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종결 이후 구소련으로부터 유럽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군사방어 목적으로 나토를 창설했다. 한 회원국이 공격받을 경우 이를 나토 동맹국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 침략당한 국가를 지원해야 한다고 규정한 '나토 5조'(Article 5)는 집단안보의 원칙을 천명하며 70년 동맹의 초석이 됐다.
그러나 워싱턴 내에서는 지난 수년간 나토의 나머지 27개 동맹국이 더 많은 분담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제기돼 왔다.
이는 트럼프의 '나토 동맹 무용론'으로 모였다. 트럼프는 미국이 부유한 나토 회원국의 안보를 위해 수천억달러의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없으며, 나토 회원국들은 국내총샌산(GDP) 대비 2%라는 최소 납부기준도 지키지 않은 채 미국의 안전보장에 무임승차하고 있다고 거듭 주장했다. 미국은 나토 방위비의 3분의 2가량을 분담하고 있다.
트럼프는 여기에서 나아가 러시아가 발트해 나토 회원국을 침략할 경우 "해당 국가가 미국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 판단한 후에 원조를 결정할 것"이라며 집단안보 원칙 자체를 부정했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을 긍정하기도 했다.
조 바이든 부통령은 "다른 사람의 말은 듣지 말라. 미국은 동맹국을 방어하는 데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유럽을 달랬다. 그러나 그 '다른 사람'이 마침내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유럽이 충격과 불안감에 빠진 이유다.
9일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자 유럽 각국 지도부는 이례적으로 연이어 성명을 발표하며 나토 수호에 나섰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국제사회는 하이브리드 전쟁(hybrid warfare), 사이버공격, 테러위협 등 새로운 안보환경의 도전을 맞고 있으며, 미국의 리더십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면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의 협력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스톨텐베르그 총장은 "모든 동맹은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상호방위에 대한 엄숙한 약속"이라며 "나토는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에게도 중요하다"고 미국의 새 행정부에 동맹의 필요성을 호소하고 나섰다.
도날드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도 공유된 가치 수호를 위해 미국과 협력하길 기대한다며 "오늘날 어떤 나라도 고립으로 강해질 수는 없다. 유럽과 미국은 가능한 한 긴밀히 협력할 수밖에 없다"고 트럼프 당선인의 고립주의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이 빠른 시일 내에 EU-미국 정상회담을 열자고 제안한 것도 트럼프 행정부 이후 미국과의 관계에서 오는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조속히 안정을 되찾고자 하는 조치의 일환이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대통령 트럼프'에 대해 유럽이 내비친 공포 요인이 과대평가됐다고 지적한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외교정책은 핵심 현안이 아니었으며, 트럼프 당선인의 정책은 대부분 국내부문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유럽 간 상호협력을 위한 민간 재단인인 저먼마셜펀드(GMF)의 이안 레저 연구원은 AFP통신에 "트럼프 당선인에게 외교정책은 국내안보에서 출발한다"고 분석했다.
또 공화당이 트럼프 당선인을 견제하는 한 동맹 방기가 실현되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취임 후 핵심공약을 구체화,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의회와의 협력과 조정은 필수불가결하며, 따라서 급격한 변화는 불가능하리란 지적이다.
EU 외무장관들은 오는 13일 브뤼셀에서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정책 고위대표의 초청으로 특별회의를 열 예정이다. 이날 회의에는 미국 대선 이후 양측 관계에 대한 의견 교환이 이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EU-미국 관계 재조정 향방이 어떻게 결정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손미혜 기자
'時事論壇 > 國際·東北亞'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 둘러싼 해양분쟁, 현실로 다가온 신냉전? (0) | 2016.11.13 |
---|---|
절대권력 다진 中-日-러.. 아시아 패권 놓고 트럼프와 '밀당' (0) | 2016.11.12 |
[이슈] 2016 미국의 선택 [트럼프 당선 - 지구촌 반응] “우리가 몰랐다, 우리 나라를” (0) | 2016.11.10 |
美대선 결과에 숨죽인 세계..통화가치·안보, '국익' 걸린 국가들 (0) | 2016.11.08 |
'앙숙' 인도-중국군, 국경서 한때 대치..인도 수로공사가 원인 (0) | 2016.1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