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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영화는 살아있다

바람아님 2016. 11. 27. 08:14
(조선일보 2016.11.25 윤성은 영화평론가)

윤성은 영화평론가
'잉글리쉬 페이션트'가 다시 영화관을 찾는다. 1997년 봄에 개봉한 후 20년 만이다. 
대학생이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처음으로 극장에서 본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가 함께 
나이를 먹고 있었다. 스무 살의 기억이 그렇듯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지금은 멀티플렉스가 된 시내의 한 극장 앞 풍경이 눈에 선하고 키스신을 담은 포스터도 친숙하다. 
어딜 가나 커다란 영화 포스터로 벽면을 장식하던 시절이었다. 20년 전 같이 영화를 봤던 친구와 
다시 보고 싶은데 아직 어린 두 아이의 엄마라 영화관 나들이는 할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다 알려진 이야기, 한 번쯤 봤거나 DVD 등을 통해 쉽게 구할 수 있는 영화들인데도 재개봉작이 
사랑받는 것은 흥미롭다. 개봉 10주년 기념으로 다시 관객들을 만난 '이터널 선샤인'은 
첫 개봉 때보다 두 배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이쯤 되면 단지 복고가 유행이라서, '추억팔이'에 편승해 호응을 얻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소비자가 만원을 주고 본 영화를 또 볼 때는 그 작품에서 새롭게 얻어갈 무언가가 있다는 얘기다. 
같은 책이라도 10대에 읽을 때와 30대에 읽을 때의 감상이 많이 다른 것처럼, 
영화도 볼 때마다 조금씩 다른 부분에 마음이 기울고 새로운 느낌을 갖게 되는 것. 
이런 경험이야말로 재관람의 즐거움이 아닐까. 살아 움직이는 영화의 생명력을 발견하는 것 말이다.

[일사일언] 영화는 살아있다

작년 고화질 감독판으로 재개봉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볼 때 그랬다.
 20대 중반에 봤을 때는 발레하는 소녀와 그녀를 훔쳐보는 소년의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는데 
작년에는 이민자들의 삶이라든가 피하고 싶은 진실, 잔인한 숙명 같은 주제에 강하게 끌렸다. 
아편굴에 들어간 로버트 드니로의 얼굴에서 훨씬 다양한 감정을 읽어낼 수 있었던 것은 세월이 가져다준 큰 수확이다. 
올겨울, '잉글리쉬 페이션트'는 또 어떤 영화로 남게 될지 궁금하다. 
좋은 영화의 수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