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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고양이의 애환

바람아님 2016. 12. 2. 07:54
(조선일보 2016.12.02 윤성은 영화평론가)

윤성은 영화평론가
우리 동네에는 붙임성 좋은 터줏대감 길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누가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였는데 1~2년 전쯤 이사를 가면서 버렸단다. 
나는 이사 오던 날부터 종종 밥도 주고 잘 자리도 봐주면서 녀석을 돌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2~3주 전부터 이 녀석이 아예 우리 집으로 들어오고 싶어 하는 눈치다. 
복도에서 한참을 놀아줘도, 좋아하는 간식을 줘도 떠나지 않고 자꾸 현관문에 머리를 비비며 울어댄다. 
슬슬 날씨가 추워지니 따뜻한 집 안이 그리운가 보다. 
키울 여력이 안 되어 쫓아 보낼 때마다 안쓰럽고 얼굴도 모르는 옛 주인이 원망스럽다.

반면, 생후 두 달 되었을 때 분양받아 만 4년 넘게 키우고 있는 우리 집 반려묘는 호시탐탐 바깥세상을 노린다. 
현관문만 열면 쏜살같이 밖으로 뛰쳐나가는 걸 겨우 집까지 유인해 데려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무리 혼을 내고 달래 봐도 소용없으니, 괜히 야생동물을 집에 가둬 키우는 게 아닌가 회의가 들기도 한다.

각각 다른 이유로 두 고양이에게 미안함을 느끼면서, 문득 둘의 생활이 뒤바뀐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해 봤다. 
집에 갇힌 길고양이는 추위와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겠지만 답답함을 견디지 못할 테고, 
길거리로 나간 집고양이는 자유를 누리는 대신 먹이를 구하느라 진땀 뺄 것이다. 
처음에는 원래 살던 곳을 그리워할 공산이 크다. 그러나 만약 어려움을 딛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게 된다면 
어떤 것이 더 나은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법. 인생이나 묘생이나 양손에 떡을 쥘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일사일언] 고양이의 애환

한 해의 마지막 달이다. 이맘때쯤에는 늘 반성과 계획들로 머릿속이 복잡하다. 
그 사이에는 언젠가 삶의 갈림길에서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후회도 있고, 
먼 곳에서 나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을 향한 열등감과 질투도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으려 한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모든 삶에는 애환이 따른다는 걸 알 만큼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잃은 것이 더 귀한 게 아니었는지는 곰곰이 따져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