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잘 나타내주는 용어로 ‘회춘법(回春法)’이 있는데 서양에서는 ‘슈나미티즘(Shunammitism)’, 동양에서는 ‘소음동침(少陰同寢)’이라는 방법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는 나이 들어 기운이 떨어진 남자가 사춘기에 들어선 동녀(童女)와 성적 접촉 없이 단지 잠자리만 같이 하여도 회춘 된다는 믿음을 실행하는 방법이다.
다윗왕과 사춘기 소녀 아비삭의 동침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존경한 왕은 다윗(David)이다. 천하를 호령하며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다윗왕도 나이들어 70세에 이르자, 몸이 쇠약해져 이불을 아무리 덮어도 따뜻하지 않고 한기를 느꼈다. 그러자 신하들은 백방으로 수소문해 팔레스타인의 수넴 마을에 사는 아비삭(Abishag)이라는 사춘기에 들어선 동녀를 왕에게 바치어왕과 동침하게 함으로써, 왕의 몸을 따스하게 하여 건강을 회복시켰다고 한다. 이 일이 수넴 마을에서 일어났다 해서 슈나미티즘이라는 말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회춘법은 고대 그리스 의학의 한 처방 형태로도 전해져, 17세기와 18세기에는 의사들에 의해 처방되었다. 젊은 피부와 접촉하면 젊은 기운을 전해 받는다고 믿은 것이다. 슈나미티즘을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브라질의 화가 페드로 아메리코(Pedro Américo1 843~1903)의 <다윗과 아비삭>(1879)이 있다.(그림 1) 이 그림에는 늙어서 백발이 된 다윗왕과 알몸이 된 동녀 아비삭이 같은 잠자리에 누워서 동녀가 왕의 구레나룻과 무성한 백발의 턱 수염을 쓰다듬고 있다. 《구약성서》 ‘열왕기’에는 동녀가 알몸이 되었다는 기술은 없으나 화가는 피부가 접촉되는 스킨십에서 회춘이 된다는 슈나미티즘을 믿어서인지 아비삭을 알몸으로 표현했다.
이러한 회춘법은 고대 로마시대에서 18세기 말까지 전해져 파리에서는 슈나미티즘 살롱까지 등장하여 14∼18세 동녀로 하여금 노인의 양쪽에 붙어 잠을 자도록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슈나미티즘은 이후에도 계속 유행해 아직도 일반 사람들 의식 속에는 속설의 형태로 남아 있는 경향이 있다.
체취 속 페로몬 물질이 핵심
근래에 와서 슈나미티즘의 원리는 피부 접촉보다 체취(體臭)의 흡입으로 설명되고 있다. 사람은 잠에 들어 무의식인 상태에서도 호흡을 계속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냄새를 흡입한다. 따라서 잠을 자면서 체취중의 ‘페로몬(Pheromone) 물질을 냄새 맡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즉, 동녀의 체취에는 남성을 자극할 수 있는 페로몬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동녀와 같이 자면 그체취에 의해 회춘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춘기 여성들이 같은 방에 모여 공동생활을 3개월만 같이하면 그녀들의 달거리(월경) 날짜가 같아진다는 것 역시 후각과 관계된다. 이러한 사실은 기숙사에서 공동생활 하는 여학생들을 통해 발견되었기 때문에 ‘기숙사 효과(Dormitory Effect)’ 또는 월경이 같아진다 해서 ‘월경동조(Menstrual Synchrony)’라고 한다. 이 같은 현상은 체취, 특히 겨드랑 밑에서 나는 땀 냄새에 의한 것으로 해석 되고 있다. 겨드랑에는 아포크린샘(Apocrine gland)이라는 땀샘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 이 샘에서 곤충 사이에서 이성(異性) 유혹 작용을 하는 페로몬 같은 성(性) 관련 물질이 분비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기숙사 효과를 확실히 중명한 사람은 미국 식물·유전학자 매클린토크(MacClintock)다. 그는 1971년 같은 기숙사에서 공동생활하는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한 결과, 여학생 겨드랑의 분비물을 가제에 묻혀 다른 여학생에게 냄새를 맡게 하면 월경주기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증명했다. 즉, 난포기(卵胞期)의 겨드랑 분비물은 여성의 배란을 촉진하여 월경주기가 단축되며, 배란기(排卵期)의 겨드랑 분비물은 여성의 배란을 지연시켜 월경주기가 늦어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겨드랑 밑의 아포크린샘에서 분비되는 분비물 중에 페로몬 물질이 포함돼 있어 같은 방을 쓰는 여학생들의 월경주기가 같아진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이 연구결과는 1971년 과학잡지 <네이처>에 게재됐다.
월경주기 같아지는 ‘기숙사 효과’
‘기숙사 효과’ 현상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이 있다. 오스트리아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의 <처녀>(1913)이다.(그림 2) 7명의 긴 머리 처녀가 서로 엉켜 무리를 지어 한 이불 속에서 잠을 자는 그림이다. 어떤 처녀는 잠에 들어 있으며, 어떤 처녀는 희열을 느낀 듯하고, 어떤 처녀는 불안을 느낀 듯한 표정이다. 한복판에서 잠들어 있는 처녀는 양손을 올려 활개를 편 자세로 겨드랑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 처녀의 왼쪽 겨드랑 냄새를 맡으며 미소지으며 자고 있는 한 처녀의 모습이 시선을 끌었다.
클림트는 처녀들 겨드랑의 페로몬 물질이 체취를 통해 서로 교류되면 ‘기숙사 효가’가 일어난다는 사실, 더 나아가서는 슈나미티즘도 결국 동침하는 동녀의 체취에 의해서 야기되는 회춘법이었다는 것을 암암리에 설명해주는 듯하다. 클림트는 사람의 체취와 페로몬 물질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지만 막연한 상상으로나마 이를 느낀 화가가 아닌가 싶은 의심이 들 정도의 직감적인 표현을 한 작품이다.
수면은 의식이 없어져 각성상태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호흡은 지속되고 코로 냄새를 계속 맡기 때문에 뇌는 각성상태 때와 마찬가지로 계속 작용한다. 즉, 각성상태에서 의식적으로 맡던 냄새에 대한 지각이 잠이 들어서도 계속 유지되는 셈이다.
최근 알려진 새로운 사실에 의하면 코에만 있다고 생각했던 냄새 수용체(受容體) 단백질이 피부와 심장, 폐, 신장,근육 심지어 정자(精子)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는 보고가 있다. 냄새 가운데 무의식 속에서도 뇌에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대표적인 물질이 페로몬이다. 따라서 잠 들어서도 남성은 여성의 체취 중의 페로몬 물질은 계속맡을 수 있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100세 시대를 사는 현대인이 알아야 할 것은 노인이 되었다고 부부가 각방을 쓰는 것은 절대 금물이라는 것이다. 즉 ‘시드른 꽃에도 옛 꽃내음은 간직되고 있다’는 문학적인 표현이 사실로 알려져, 부부는 사별(死別)할 때까지 동숙동침(同宿同寢)해야 한다는 것이 100세 시대 부부의 ‘반려자 인생건강의 첫걸음’임을 알아
야 할 필요가 있다.
문국진 박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법의학자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과 과장,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 교수, 뉴욕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대한민국학술원회원, 대한법의학회 명예회장,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평화교수 아카데미상, 동아의료문화상, 대한민국학술원상, 함춘대상, 대한민국과학문화상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