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2.17 김성현 기자)
美 맨해튼 식당 요리사인 저자
'팜 투 테이블' 신념 내세워 지속 가능한 농업 가능성 모색
30년 뒤 미래 메뉴도 소개
제3의 식탁|댄 바버 지음|임현경 옮김|글항아리|672쪽|2만8000원
한국의 개고기 못지않게 논란이 되는 식문화(食文化)가 '기름진 간'이라는 뜻의 프랑스 요리
'푸아그라(foie gras)'다.
거위 목구멍에 금속관을 삽입하고 엄청난 양의 사료를 집어넣은 뒤 간을 10배 정도 부어오르게 하는
잔인한 사육 방식 때문이다. 천연 식재료를 중시하는 미국 뉴욕 맨해튼 식당 요리사인 저자는
"79㎏의 사람이 20㎏의 파스타를 매일 먹는 것과 비슷하다"고 한탄한다.
저자가 유별난 점은 탄식이나 푸념에 그치지 않고 실제 행동에 나선다는 점이다.
'활동가로서의 요리사'를 자처하는 저자는 '강제 급식' 없이 자연 상태에서 거위를 키우는 '천연 푸아그라'를 찾아 나선다.
이 책은 농업과 목축업이 갈수록 대량화·기업화하는 시대에 거꾸로 자연 친화적 생산과 재배가 가능한지 탐구하는
현장 보고서이자 체험기다. 해충과 잡초가 득실거리는 콩밭, 좁은 축사가 아니라 덤불에 살면서 도토리를 게걸스럽게
찾아 먹는 돼지들의 사례가 차례로 등장한다. 미국판 '신토불이(身土不二)'라고 할까.
저자의 신념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팜 투 테이블(farm to table)'이다.
말 그대로 '농장의 천연 식재료를 최대한 그대로 식탁으로 가져온다'는 뜻이다. 하지만 막상 저자도 스페인의 목초지에서
거위를 풀어놓고 방목(放牧)하는 풍경 앞에서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절반 이상의 거위 알을 매가 먹어치우고,
거위 새끼도 병에 걸리거나 잡아먹히기 일쑤이지만 농장주는 눈 한 번 깜박하지 않고 말한다.
"거위가 먹고 싶어 하는 것만 잘 제공해주면 거위가 보답할 것"이라고.
저자이자 요리사인 댄 바버. 2009년 타임지의‘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댄 바버 트위터
농약과 기계화, 유전자 변형 작물(GMO)의 시대에 때로는 복고적이고 낭만적인 주장으로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지속 가능한 농업'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자연 친화적 방식으로 밀을 재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리·귀리 등 다양한 작물을 함께 섭취할 때 지금의 단일 경작 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현장 보고서에서 출발한 책은 현대 인류의 식습관과 생산·소비 방식에 대한 진지한 철학서로 변모해간다.
요리사답게 책 말미에는 2050년 미래의 식탁에 놓일 만한 대안적 메뉴를 소개한다.
'식물 플랑크톤을 곁들인 송어'와 '야채 스테이크', '쌀 푸딩'과 '맥주 아이스크림'처럼 눈이 번쩍 뜨일 만한 메뉴가 많다.
"환경주의자가 아닌 미식가는 어리석은 사람"처럼 미식(美食)에 대한 관점을 재정립하는 데 도움이 되는 구절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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