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관저에 틀어박혔고 청와대 실세들은 '난 몰라'였다
그 극단적 무능과 소인적 행태 그들은 왜 청와대에 있었는가
그들에게 국민은 무엇인가?
조류인플루엔자(AI)가 전국을 강타했다. 살처분된 닭이 벌써 2500만 마리에 이른다. 계란대란 때문에 달걀 없는 해장국을 팔아야 할 형편이고, 치킨집과 치맥집이 속속 문을 닫는다. 국가 기능을 마비시킨 최순실 게이트가 양계장, 식당, 치킨 체인점, 서민 밥상에도 한파를 몰고 왔다. 시베리아와 아무르강 타이가숲에서 이륙한 철새 떼는 겨울 내내 한반도 전역에 무작정 착륙할 예정이다. 이번 겨울은 통치권이 소멸된 공간에 날아드는 AI와 싸워야 할 모양이다. 한 달 전, AI가 최초 보고된 전남 해남에 촘촘한 방역망을 둘러치고 생매장이라는 강수를 썼더라면 어지간히 방어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신바람 난 철새들은 바이러스를 빠르게 살포했고 애꿎은 닭만 죽어 나갔다.
텅 빈 논밭에 내려앉은 철새를 낚아채 주리를 튼다 해도 꽥꽥 소리만 지를 뿐 AI 주범임을 부인할 거다. 그 수많은 무리 중 누가 주범이고 누가 공범일까. 닭과 오리가 수천만 마리 더 매장되고, 계란이 씨가 말라도 AI를 살포한 개체를 찾기는 틀렸다. 방역망을 한없이 넓힐 뿐이다. 이게 꼭 청문회를 닮았다. 대통령이 친애하는 최순실의 손길이 닿은 곳마다 곪아 터진 상처 자국이 선명한데 ‘최순실’을 만난 사람은커녕 이름조차 듣지 못했다고 항변하는 꼴이 그렇다. 청와대에 앉아 대한민국을 통치했다는 최고 엘리트들이 그러하니 씁쓸하다 못해 부끄럽다. 국정 농단의 상처는 유혈 낭자한데 자신과는 ‘관련 무(無)!’거나 ‘난 모른다’로 일관하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발각됐으니 다행이지 호열자보다 더 무서운 최순실인플루엔자(CI)가 ‘난 몰라’ 공화국을 쓰러뜨렸을 거다.
청와대 실세들은 앵무새 군단이었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옅은 냉소를 날리면서 ‘난 몰라’를 중얼댔다. 사정기관에서 수집한 고급 정보를 총괄하는 민정수석이 최순실을 몰랐고, 문화체육관광부 전횡을 몰랐고, 기업 돈 갹출을 몰랐다면 왜 그 자리에 있는가? 직무유기이거나 무능력자임을 자인하는 거다. 아니면 법률지식을 동원해 무능이 유능보다 형량이 적다는 걸 노린 비열한 연출이다. ‘난 몰라’ 공화국의 몰염치는 이화여대 부정입학을 캐는 자리에서도 재연됐다. ‘진정 난 몰랐네’를 항변하는 총장의 눈물은 처절했다.
‘난 몰라’ 병에 안 걸린 딱 한 사람은 조원동 전 경제수석이었다. 그는 시인했다. ‘청와대에서 윗분의 지시를 어기기 어렵습니다’. 아드레날린이 과다 분비돼 공격에 열을 올리는 의원들 중 그 소리에 신경 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난 몰라’ 병은 따지고 보면 대통령의 무사고(無思考)에서 발원한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애국심! 자신의 통치행위는 어떤 형태라도 정당하다는 그 믿음 말이다. 아버지 박정희에게서 터득한 군주적 성정을 김기춘은 ‘차밍하고 엘레강스하다’고 했고, 우병우는 ‘진정성을 믿기에 존경한다’고 했다. 그리하여 ‘난 몰라’ 공화국 실세들의 애창곡은 이 노래다. 심수봉이 불렀다. ‘그대 내 곁에 선 순간/그 눈빛이 너무 좋아/지나간 세월 모두 잊어버리게/~~사랑밖엔 난 몰라’. 그들에게 국민은 무엇인가?
송호근
서울대 교수 ·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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