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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준비하는 책5] 동양 古典·진화심리학·수학·地政學… 2017년, 초불확실성 시대를 돌파하라

바람아님 2017. 1. 1. 18:47

(조선일보 2016.12.31 어수웅 Books팀장)


[편집자 레터]

어수웅 Books팀장

내일부터 2017년.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엽니다. 2017년을 준비하는 다섯 권 독서를 제안합니다.


2016년 조선일보 올해의 저자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와 소설가 정유정은 논어와 셰익스피어를 

추천합니다. '100세 시대' 철학자는 동양 고전에서 길을 찾고, 스릴러의 장인(匠人)은 셰익스피어 

진위 논쟁을 통해 편견의 위험을 경고하죠. 분야별로 안배했지만, 과학만은 특별히 필자를 두 분 

모셨습니다. 물리학자 김상욱 부산대 교수와 진화심리학자 장대익 서울대 교수입니다.


희망적 미래는 올바른 선택에서 비롯됩니다. 엄밀한 물리학자는 틀리지 않고 올바르게 선택하는 방법을, 

유연한 진화심리학자는 미래에도 바뀌지 않을 인간 본성을 들려줍니다.


국립외교원은 2017년 세계 전망에서 '초(超)불확실성의 시대'를 언급했다죠. 

아이켄그린 미 버클리대 교수가 창안한 이 개념은 차라리 40년 전 갤브레이스의 '불확실성의 시대'를 부러워합니다. 

그때만 해도 확실한 시절이었다는 거죠. 마지막으로 국립외교원 인남식 교수의 추천 도서는 '지리의 힘'. 

초불확실성 시대 세계 정세 이해를 도와주는 친절한 정치 외교 참고서입니다.


/Getty Images 이매진스


2016년 마지막 날까지 너무 진지했나요? 독서 애호가의 계절별 농담 한 토막이 있습니다. 

"겨울: 눈이 오네요. 나가지 말고 집에서 책이나 읽어야겠습니다. 

봄: 알레르기가 있어요. 나가느니 집에서 책이나 읽는 게 낫겠습니다. 

여름: 너무 더워요. 시원한 실내에서 책이나 읽으렵니다. 

가을: 바람이 많이 불어요. 안에서 책을 읽는 편이 낫겠습니다."


일기(日氣)는 달라도 결론은 하나. 책은 당신을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는 것. 

'논어' '빌브라이슨의 셰익스피어 순례' '틀리지 않는 법' '본성이 답이다' '지리의 힘', 

이 다섯 권으로 예측 불가능한 2017년을 지혜롭게 돌파하시길. 


[本性은 늘 그대로… 중요한 건 인간이다]


'본성이 답이다'진화심리학자 장대익 추천 '본성이 답이다'


전중환 지음|사이언스북스|256쪽|1만6500원

182.4-ㅈ322ㅂ/ [정독]인사자실(2동2층)/ [강서]2층


어쩌다가 나는 학생들을 특별히 괴롭히는 수업을 수년째 개설 중이다. 

전공이 다른 학생 서넛이 조를 이뤄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해야 하는 수업이다. 

거기까지는 괜찮다. 

한데 그 문제를 자신들이 어떻게든 새롭게 발굴해야 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최근에 나는 이 수업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스스로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너무도 쉽게 다음과 같은 오류에 빠진다는 점이다.

"기능을 만들면 사람들이 잘 쓰겠지!" 

가령, 스마트폰에 소개팅 어플 같은 것을 만들어 깔면 당연히 사람들이 쓸 것이라 예상하는 식이다. 

이런 착각에 나는 급기야 '기능집착증'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하지만 짝짓기가 중요한 젊은이들에게도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일단, 소개팅 어플의 품질과 상관없이 여성들은 절대(거의) 쓰지 않는다. 

설령, 강력한 유인 요소 때문에 남성 사용자들이 득실댈지라도 정작 여성 사용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설령, 여성 사용자가 다소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운영자의 암약이거나 인공지능의 활약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얼마 전 회원 정보가 해킹되어 문제가 되었던 모 데이트 사이트에서 여성 회원 상당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한갓 어플에서도 남녀의 진화된 짝짓기 전략 차이가 명확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언하곤 한다. 

아무리 발랄한 기능을 만들어 놓아도 인간의 짝짓기 행동에 대한 (과학적) 이해에 기반을 두지 않는 소개팅 어플에는 

파리만 날릴 것이라고. 

인간의 마음과 행동의 작동 원리에 대해 관심이 없다면 구매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물건을 만들 수 없다고. 

가령, 음향 기기 업체가 인간 귀의 분해능(分解能)을 넘어서는 고성능 스피커에만 집착한다고 해보자. 

곧 망할 것이다. 하이터치가 없는 하이테크는 소비자에게 외면당한다.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이 하이터치는 어디서 배울 것인가? 

그것은 우리의 행동에 대해 '왜?'를 던졌을 때만 도달할 수 있는 영역에 있다. 

진화심리학은 이 '왜?'의 학문이다. 

국내에서 이 분야를 선도적으로 개척해온 저자는 여기서 우리 사회와 문화의 민낯을 진화론적 

관점으로 조명한다. 그의 유려한 해설은 훈훈한 사건들(모성·협력·인권 존중·선행·연애)뿐만 

아니라 엄중한 사건들(폭력·차별·갑질·학대·성추행·성매매·살인)에까지 뻗친다.


저자는 탄탄한 이론들로 중무장했지만 독자는 지루하지 않다. 

우리 주위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들을 다루고 있어서 흥미로운 것만도 아니다. 

전문적 지식을 고급지게 풀어낼 수 있는 저자의 탁월한 능력 덕분이다. 게다가 간결한 그의 글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가령, 진화학 분야의 '값비싼 신호 이론(비싼 신호여야 신뢰를 준다는 이론)'을 통해 진정 어린 사과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는 "무덤덤하고 굳은 얼굴로 사과하는 것은 꾸며낼 수 있지만 뺨이 붉어지고, 눈물을 흘리고, 

말까지 더듬는 얼굴로 사과하는 것은 꾸며낼 수 없다"고 풀어낸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31초 만의 눈 깜박임이 만들어낸 어떤 눈물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그때 우리가 감동받지 못했던 이유를 상상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이 분석하고 있는 에피소드는 물론 과거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정확히 2017년의 것이기도 하다. 

달력은 교체되어도 인간 본성은 그대로. 요동칠수록 변하지 않는 것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킥킥 웃으며 배우는 '올바른 선택법']


'틀리지 않는 법'

물리학자 김상욱 추천 '틀리지 않는 법'


조던 엘렌버그 지음|김명남 옮김|열린책들|616쪽|2만5000원

410-ㅇ332ㅌ=2/ [정독]인사자실(새로들어온책)/ [강서]2층


2017년은 대통령 선거의 해다. A, B, C 세 명의 후보가 나왔다고 하자. 

선거 결과 A가 40%, B가 31%, C가 29% 나왔다면 A가 대통령이 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라. 이건 불합리하다. A를 원치 않은 사람이 60% 아닌가! 

그래도 다수결이 최선이라고 주장할 사람이 있을 거다. 

C를 지지한 사람들을 분석해보니 차선책으로 A를 고를 사람이 4%, B를 고를 사람이 25%였다. 

만약 A, B 두 명만 출마했다면 B가 됐을 거란 뜻이다.

이것은 노태우·김영삼·김대중 후보가 출마했던 1987년 13대 대통령 선거 결과와 비슷하다. 

과연 다수결은 언제나 최선의 방법일까?


우리는 항상 최선의 선택을 바란다. 조던 엘렌버그는 그의 책 '틀리지 않는 법'에서 그 방법을 알려준다. 

수학적 사고를 하라! 문제는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거다. 

독자 가운데는 앞의 예에 등장하는 숫자들만 보고도 머리가 아팠던 사람이 있으리라. 수학은 어렵고 재미없다. 

인생에 유용하니까 배운다지만, 입시 말고 뭐가 유용한지 답하기도 막막하다. 

단지 논리력 배양을 위해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풀어야 하나 하는 자괴감이 들 뿐이다. 

사실 수학은 우리가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방식과 관련 있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이든 더 잘할 수 있게, 또 틀리지 않도록 도와준다.


전투기에서 총알에 가장 취약한 부분은 어디일까? 

전투를 마치고 귀환한 전투기를 조사해보니 가장 많은 총알이 박힌 부분은 동체였고, 가장 적은 곳은 엔진이었다. 

그렇다면 가장 위험한 동체의 장갑을 강화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다. 엔진이 고장 난 전투기는 추락한다. 

엔진에 박힌 총알이 적은 이유다. 

출격한 전투기 전체가 아니라 무사 귀환한 전투기만 가지고 통계를 낸 것이 문제였던 거다. 

수학자는 문제를 풀기에 앞서 주어진 가정이 무엇이며 그 가정이 정당한지부터 생각한다. 

이것이 틀리지 않는 법이다.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


틀리지 않는다고 옳은 것은 아니다. 수학은 우리에게 확신하지 '않는' 방법을 알려준다. 

50년 뒤 인공지능이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대체할까? 

이런 예측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가정에 따라 답이 얼마나 많이 바뀌는지 알 거다. 

가정에 따라 기계가 인간을 지배할 수도 있고, 지금이랑 많이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냥 모른다고 하는 게 답이다.


사람들은 확신을 좋아한다. 확실치 않다는 사람보다 무조건 자기를 믿고 따라오라는 사람이 인기 있는 이유다. 

하지만 확신하지 않는 것은 나약한 태도가 아니라 진정 강인한 태도다. 

모를 수밖에 없는 논리적 이유를 알 때 그러하다. 수학은 이것을 체계적으로 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틀리지 않는 방법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나머지는 직접 책을 보고 찾으시라. 수학책이라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이 책의 진정한 미덕은 엘렌버그가 보여주는 촌철살인의 유머들이니까. 

내용이 어려울라치면 유머 한 방으로 계속 읽어나갈 힘을 준다. 수학의 빌 브라이슨이랄까. 

2017년에도 우리는 많은 선택을 해야 한다. 사실 좋은 미래란 올바른 선택들로부터 온다. 

당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길 바란다면 '틀리지 않는 법'을 읽어보시라. 

김명남의 깔끔한 번역은 덤이다.


[지리·역사 종횡무진… 세계 정세 한눈에]


'지리의 힘'

국립외교원 인남식 교수 추천 '지리의 힘'


팀 마샬 지음|김미선 옮김|사이|368쪽|1만7000원

340.98-ㅁ166ㅈ/ [정독]인사자실(새로)/ [강서]2층


영국 유학 시절, 사립학교 출신 귀족 학생들과 함께 어울린 적이 있다. 

한 학기를 보내면서 이들이 다른 어떤 분야보다 역사와 지리에 해박하다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제국을 경영했던 후예들의 독특한 시선이랄까? 

시간을 짚어내는 '역사'와, 공간을 구성하는 '지리'에 관한 지식과 통찰력은 마치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있었다. 

특히 지리는 곧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문화를 이해하는 기초가 된다.


팀 마샬의 '지리의 힘'(원제 Prisoners of Geography)은 제목 그대로 지리에 관한 책이다. 

지리에 관한 선입관이 있다면 아마 '복잡함과 따분함'이리라. 

그러나 이 책은 세계지도를 여럿으로 잘라 설명하거나, 숱한 지형지물을 열거하며 독자의 인내를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인과율이 담긴 10개의 스토리텔링으로 다가간다.


왜 중국이 대륙의 올무를 끊고 해양 강국을 꿈꾸는지, 중국은 왜 티베트에 목숨을 거는지, 

그에 대한 시진핑의 고민과 우려는 무엇인지 고스란히 전달된다. 

같은 맥락에서 지정학적 대전략인 일대일로(一帶一路)의 의미가 일목요연하게 이해된다. 미국 이야기는 더욱 흥미롭다. 

미국이 받은 지리적 축복과 지금 누리는 초강대국적 지위의 배경을 훑으면서 국제사회의 안정과 번영을 견인해야 한다는 

책임 의식과, 아프간·이라크전으로 인한 피로감 사이의 딜레마를 설명한다. 

저자는 1796년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퇴임 연설을 살짝 인용하고 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트럼프 현상과 궤를 같이한다. 

"뿌리 깊은 반감 때문에 특정 국가들과 반목하지 말며, 또한 어떤 국가들의 열정적인 접근에도 연루되지 말 것이며, 

바깥 세계에서는 항구적인 동맹들과도 일정하게 거리를 두라."


러시아와 유럽, 중동, 아프리카 등도 빠질 수 없다. 

러시아에 크림반도 세바스토폴항이 왜 중요한지, 우크라이나 대평원과 민족 분포가 작금의 혼란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유려하게 풀어내고 있다. 

카펫 양쪽 솔기가 풀려가는 유럽의 동서 분열상, 인위적 국경 분할이 초래한 중동 특히 시리아의 비극, 

식민주의의 아픔이 여전히 살아 있는 아프리카 이야기를 읽다 보면 때론 안타까움이, 때론 분노의 탄식이 솟구치기도 한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그러나 이 무엇보다 독자의 눈길은 

'강대국들의 경유지'라는 역자의 부제가 달린 한반도에 오래 머물게 된다.

한반도 문제의 '해결'은 불가능하고 '관리'만 가능할 뿐이라는 이 장 첫 문장에 담긴 비관은 어쩌면 

우리가 부러 간과해 온 현실일지 모른다. 

이어지는 엄중한 현실에 관한 저자의 묘사를 따라가다 보면 한숨만 남는다. 하지만 그렇기에 한반도를 

둘러싼 비관적 지정학의 현실을 넘어서는 새로운 시선과 몸놀림이 우리에게 필요한 시점일 수도 있다.


원저는 러시아가 맨 앞에 놓여 있지만, 번역서 첫 장은 중국 이야기다. 

복잡한 중동보다도 한반도를 앞에 둔 이유도 필경 우리 독자들을 배려한 것이리라.


가능하면 세계지도책 옆에 놓고 하나하나 짚어가며 읽기를 추천한다. 이 책은 지리책이지만 지리책을 넘어선다. 

국제정치와 역사, 그리고 오늘의 세계정세를 이해하게 하는 해설서다. 

약간 과장을 보태면, 읽은 후 마치 세상의 큰 이치를 이해한 듯한 뿌듯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 이치가 바로 '움직이지 않는' 땅과 산과 바다의 이치이다.


[편견 없는 눈을 갖기 위한 '지적 여행']


'빌 브라이슨의 셰익스피어 순례'

소설가 정유정 추천 '빌 브라이슨의 셰익스피어 순례'


빌 브라이슨 지음|황의방 옮김|까치|224쪽|1만2000원

842.09-ㅅ414브/ [정독]어문학족보실(2동1층)/ [강서]3층


"방자한 표정, 호색적인 입술."

이야기는 한 남자의 초상화에 대한 촌평으로 시작된다. 

리처드 플랜태저넷 템플 누전트 브리지즈 챈도스 그랜빌

(우리나라의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옹과 의형제로 보이는)이라는 귀족이 

남긴 유품으로, 그림 속 주인공은 윌리엄 셰익스피어다. 그렇다. 

누구나 인터넷 포털에서 볼 수 있는 바로 그 초상화다. 작가는 이 지점에서 하나의 질문을 제시한다. 

이 셰익스피어는 그 셰익스피어일까?


작가에 따르면, 셰익스피어는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면서 동시에 가장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다. 

남아 있는 기록은 네 가지에 불과하다. 침례 기록, 결혼 기록, 두 번에 걸친 아이의 출생 기록. 

셰익스피어에 대한 전기들은 95%의 억측과 5%의 사실로 이뤄졌다고도 한다. 

일부 학자들은 아예 셰익스피어가 가짜라고 주장한다. 

우선 생애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는 점이 이런 주장을 가능하게 한다. 

그토록 박식하고 위대한 작가가 대학을 나오지 못한 '스트랫퍼드 촌놈'일 리 없다는 것도 중대한 이유란다. 

오리지널 셰익스피어로 빈번히 호출되는 인물은 프랜시스 베이컨이다. 

셰익스피어라면 마땅히 베이컨 정도의 신분이라야 걸맞다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에 관한 책만 해도 줄잡아 7000권쯤 나와 있다고 한다. 여기에 빌 브라이슨이 한 권을 더 보탰다.


빌 브라이슨은 저 유명한 애팔래치아 종주실패기, '나를 부르는 숲'의 작가다. 

내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읽는 보증수표 작가다. 

여행, 과학, 역사, 어떤 분야든 방대한 지식과 성실한 조사를 바탕으로 정확하고 쉽고 재미나게 쓴다는 점에서 그렇다. 

정신없이 책장을 넘기는 와중에 쉴 새 없이 낄낄거리게 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셰익스피어에 꽂혀 무려 7001번째쯤 되는 책을 썼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터. 

이야기 초입에서 그는 "우리가 기록에 근거해서 셰익스피어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 수 있는지, 

실제로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 알아보자는 것"이라고 밝힌다.


정유정 소설가정유정 소설가


그는 셰익스피어의 생애를 연대순으로 짚어간다. 

출생, 성장, 결혼, 베일에 싸인 7년의 공백기, 작가적 전성기, 죽음. 뒤를 따라가다 보면 

좀 더 객관적으로 셰익스피어를 알아가게 된다. 

셰익스피어가 영어라는 언어에 미친 지대한 영향에 대해. 

작품이 거칠고 상스럽다는 세간의 조롱이나, 작품 속에 남긴 실수, 표절 의혹에 대해서도. 

차근차근 성취를 쌓아 가는 성실한 기질이나 아내에게 둘째로 좋은 자신의 침대를 남긴다는 기이한 유언장 내용까지. 

덤으로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엘리자베스 1세와 제임스 1세 시대의 영국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중요한 정치적 사건, 나라를 뒤흔든 역병, 스페인 무적함대와의 전쟁, 가톨릭과 신교의 대립과 분열, 

연극이 전성기를 맞이한 사회적 배경…. 마지막 장에서 빌 브라이슨은 이런 결론을 내린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드러나는 다양성은 그가 평민이자 스트랫퍼드 촌놈이이었기에 가능했다."


이 지점에 이르면, 결론은 큰 의미가 없어진다. 

중요한 건, 이 지적 여행이 우리에게 선물한 것이 무엇이냐다. 

셰익스피어를 알아가는 과정은 우리가 타인에게 갖는 편견의 위험성과 오만함을 깨닫는 여정이었다. 

그러니 모쪼록 체험해 보시라. 편견 없는 눈이 우리와 우리 삶을 얼마나 품위 있게 만드는지.


[전 세계인에게 論語를 권한다]


'논어'

96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 추천 '논어'


공자 지음|이기석·한백우 편역|이가원 감수|홍신문화사|463쪽|1만5000원

148.3-ㄴ76호2/ [정독]인사자실서고1(직원)/ [강서]2층


오래전 일이다.

내가 쓴 책 '예수'를 본 친구 안병욱 선생이 '아차 내가 늦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는 얘기였다. 

오래전부터 '논어를 통해 본 공자의 생애와 사상'을 써보고 싶다는 뜻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도 한두 번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아마 안 선생이 젊었을 때부터 서예를 즐기면서 한문에 관한 조예가 깊었기 때문에 공자를 흠모하게 

되었을지 모른다. 

그러고 보면 그는 한국인이라면 '도산 안창호'를, 세계 모든 사람에게는 '논어'를 권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남겨 놓은 서예 작품에는 공자의 글귀가 많이 나오곤 한다.


2년쯤 전의 일이 기억에 떠오른다. 서울의 은퇴한 개신교 목사님들의 모임에 참석한 때가 있었다. 

목사님들은 나이 일흔이 정년으로 되어 있으니까 연로한 분들이다. 200명 전후가 한 달에 한 번씩 갖는 집회였다. 

내가 맡았던 강연을 끝내고 가까운 몇 분과 차를 마시다가 지금은 목사님들이 시간의 여유도 생겼을 테니까 

독서할 기회가 많아졌을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내 강연 속에 고전에 관한 얘기가 들어가 있었던 때문이다.


대화를 나누다가 예를 들어 말하면 "우리 목사님들 가운데 '논어'를 공부하거나 읽은 분이 얼마나 될까요"라고 물어보았다. 

대답은 뜻밖이었다.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다면 별로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럴 것 같기도 하다. 교회에서 자라 기독교 학교에 다녔다면 공자나 '논어'를 접할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보수적인 목회자들은 공자와 논어를 멀리했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 점에서는 신부님들도 비슷할 것 같다. 

그러나 정신적 지도자로서는, 특히 동양 사회나 한국의 지성인으로서 '논어'를 읽은 일이 없다면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보았을 때는 의아스러울 정도의 현상이기도 하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나도 교회에서 자라 중·고등학교 때 기독교 학교에 다녔다. 대학도 천주교 계통이었다. 

선생님들로부터 '논어'를 권고받은 일은 없었다. 

그러나 철학을 함께 공부한 친구들은 모두가 '논어'를 읽었다. 그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었다. 

십여 년 전에는 다시 한 번 읽었다. 

두 번째 읽으면서는 내가 만일 신학대학에서 강의를 한다면 '논어'를 권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공자를 알게 되면 선하고 아름다운 인간관계에 대한 윤리적 열정을 배우게 된다. 

그러면서도 인간적 삶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게 해준다. 기독교 신앙이 왜 소중한가 함도 새삼 깨닫게 된다. 

기독교 신앙은 인간 예수가 구세주 그리스도임을 받아들이는 데 있다. 공자는 인간 중의 인간으로 산 스승이다. 

그러기에 신앙에의 길을 암시하면서 모색했던 분이다.


그래서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도 성실한 사람은 악마도 유혹하지 못하며, 

하나님도 성실한  사람은 버리지 않는다는 격언이 있었다. 공자는 성실한 삶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성실한 사람을 버리는 종교인이 있다면 그게 잘못된 것이리라. 

나 자신도 성실한 삶을 원해왔다. 

그러다가 경건한 삶을 느끼게 되면서 종교적 신앙이 무엇인가를 더 깊이 깨닫게 되었다.


'논어'를 통해 새해를 맞으면서 진실한 인생을 그리고 은총의 축복을 누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