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2.23 신동흔 기자)
- 파크 애비뉴의 영장류
뉴욕 최상류층 모인 파크 애비뉴, 명품백으로 서열 결정하는 모습…
사바나 침팬지의 행태 연상시켜
- 런웨이 위의 자본주의
패션계 화려함에 가려진 폭력성 "트렌드가 된 불평등, 균형 필요"
파크 애비뉴의 영장류|웬즈데이 마틴 지음
신선해 옮김|사회평론|372쪽|1만4000원
런웨이 위의 자본주의|탠시 E. 호스킨스 지음
김지선 옮김|문학동네|364쪽|1만7000원
아들 한번 잘 키워 보겠다고 큰맘 먹고 이사온 뉴욕 맨해튼,
그중에서도 어퍼이스트사이드에 집을 얻은 30대 인류학 박사 출신 웬즈데이 마틴.
어느 날 식료품점에 들러 바나나와 우유가 든 비닐봉지를 들고 매디슨애비뉴에서
파크 애비뉴로 향하는 이스트 79번가를 걷다가 '공격'을 받는다.
한 중년 여성이 마치 눈앞에 아무도 없다는 듯 자기 앞으로 걸어왔고, 자신은 길 옆으로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기선 제압!' 자기 앞을 피식 웃으며 지나가는 여자의 왼쪽 팔에 걸쳐져 있던 명품 백.
뉴욕의 0.1% 최상류층이 모여 사는 이곳에서 열대우림 사바나의 침팬지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서열 짓기와
편 가르기 원리가 그대로 통하고 있었다. 그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나도 에르메스 버킨 백이 필요하다!'
동시에 이 사건은 예일대에서 인류학 박사학위까지 받은 그녀의 연구자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리하여, '북아메리카 대륙 북위 40˚43´42˝, 서경 73˚59´39˝의 한 섬에 거주하는 영장류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다.
그녀는 연구 대상 속으로 들어가 직접 기술하는 인류학적 연구 방법을 택한다.
다른 엄마들처럼 명문 대학 진학률이 가장 높은 어린이집에 아들을 보내고, 대기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놓고도 몇 년씩
기다려야 하는 수천만원짜리 버킨 백을 연줄을 이용해 기어코 손에 넣는다.
6년에 걸쳐 벌인 서열 쟁탈전과 텃세와의 싸움을 현장 연구 방식을 빌려 묘사한 책은 독자들에게 풍자적 재미를 안겨준다.
230 헴슬리 빌딩이 보이는 파크 애비뉴의 야경.
잘 관리한 몸매와 디자이너 브랜드 가방이나 패션을 통해 이곳 거주자들은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공유한다.
/사회평론·문학동네
곳곳에서 파크 애비뉴 거주자들은 영장류의 행태를 연상시킨다.
버킨 백을 마련하는 대목에서 그녀는 제인 구달이 연구한 침팬지 '마이크'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마이크는 몸집도 왜소하고 서열이 낮아 종종 괴롭힘과 구타를 당했다.
하지만 어느 날 텅 빈 채 버려져 있던 등유 깡통 두 개를 주우면서 '인생역전'에 성공한다.
금속 소재에 손잡이까지 달린 깡통 두 개를 두드리면 정글에선 들어보지 못했던 굉음이 났다.
'과시 행위'에 안성맞춤이었던 것. 마이크는 이후 5년 동안 무리의 우두머리로 지낸다.
이 섬에 사는 영장류 역시 마이크와 다르지 않다.
그들은 명품 백으로 서열을 결정하고, 완벽한 몸매로 종족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있었다.
'파크 애비뉴의 영장류'가 인류학적 연구방법론을 택했다면,
'런웨이 위의 자본주의'는 어퍼이스트사이드의 물질적 풍요를 가능하게 하는 토대와 경제적 하부 구조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영국의 사회운동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에 따르면 옷은 권력을 표현하고 재생산하는 이데올로기다.
"권력을 합법화하고, 현 사회를 지배하는 이들이 계속 지배해야 한다는 인식"을 굳건히 다지는 수단이라는 것.
저자는 그 옛날 부잣집 도련님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영국으로 와서 자본주의의 폭력성을 목격한 현장도
당시 패션 산업이 전성기를 누리던 맨체스터 지역이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지금은 달라졌는가.
2013년 4월 방글라데시 다카의 섬유업체 밀집 건물 라나플라자에서 붕괴 사고가 일어나 1122명이 사망한다.
이들은 모두 베네통, 망고, 월마트에서 판매되는 패션 상품을 납품하는 공장 직원이었다.
아르마니, 랄프로렌, 마이클 코어스, 휴고보스 등도 방글라데시에 공장을 갖고 있다.
명품이 만들어내는 화려한 이미지는 이 폭력적인 현실을 철저히 가리고 있다는 것.
저자는 패션 산업계 내부의 목소리를 빌려 이 산업의 진정성에 의문을 던진다.
"순전히 마케팅을 위한 개소리예요.
가방 만들고, 그걸 몇몇 유명인에게 보내고, 그들이 그걸 들고 집을 나서는 장면을 파파라치가 찍게 하죠.
그리고 그 사진을 타블로이드에 팔고는 그걸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고 잡지에서 말하는 거죠."
명품 가방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에서 일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말이다.
파크 애비뉴 영장류는 이상행동을 보인다.
"그들은 내면에 상처를 입지만, 그 아픔이 어디에서 오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소유 강박증'에 끊임없이 내몰리고 있다.
이곳 거주자들은 44 사이즈를 입기 위해 공복감에 익숙해지고, 알코올에 지나치게 의존한다.
비판과 풍자는 넘치지만, 두 저자 모두 지금보다 나은 체제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너무 많이 가진 사람들과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의 불평등은 이미 커다란 트렌드이기에,
어느 지점에서는 균형점을 찾아야 할 것"(런웨이 위의 자본주의)이라며 책을 끝맺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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