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서(焚書). 진시황이 기원전 213년 저지른 일이다. 진의 천하통일로부터 따져 8년째 되던 해에 벌어졌다. 무슨 책을 불살랐을까. 재로 변한 것은 여섯 제후국의 역사서다. “통일제국에서는 진 이외의 어떤 역사도 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을까. 제자백가서는 장서실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장생불사로 황제를 속인 도가 술사를 땅에 묻은 갱유(坑儒)는 이듬해의 일이다. 이때의 유(儒)는 유가 학자(大儒)가 아니다. 처형된 460명 대부분은 도가의 소유(小儒)였다.
분서갱유는 진시황 악행 첫머리에 오른다. 왜? 소유를 묻었기 때문이 아니다. 책을 불사른 탓이다. 6국의 흔적을 깡그리 지웠으니 후손들의 가슴은 얼마나 부글부글 끓었을까. 진시황의 분서는 수천년을 두고 화두 하나를 남겼다. “책은 무엇일까.”
문자가 만들어진 후 수많은 경험은 책의 형태로 남겨진다. 그 경험은 자식세대에 남기는 생존을 위한 지식이다. 농서, 의서는 물론 동양 인문학의 세 줄기인 문사철(文史哲)도 생존을 떠나서는 말할 수 없다. 책을 남기는 인류, 자식에게 책을 권하는 부모. 그 마음은 새끼에게 생존 방법을 가르치는 어미의 본능과도 같은 것일까.
그 책이 변하고 있다. 디지털혁명에 떠밀려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책을 대신하는 것은 디지털화한 파일이다. 이제 책은 역사의 중심 무대에서 밀려나는 걸까.
세태가 변하니 동네 서점 주인에게서는 한숨만 나온다. 서점 주인에게 어떤 소설보다 흥미진진한 최순실 농단 드라마는 횡액이다. 농단 드라마 보는 맛에 책을 사질 않는다. 횡액 하나가 또 터졌다. 책 도매유통업체인 송인서적의 부도. 1959년 사업을 시작했으니 환갑을 눈앞에 두고 쓰러지고 만 격이다. 피해금액 370억원. 거래처 한 곳당 피해액을 1000만원으로 치면 3700곳, 1억원으로 치면 370곳이 덫에 걸렸다. 출판사만 피해를 입은 걸까. 동네 서점도 바람 앞 등불처럼 변했다. 책은 팔리지 않는데 책을 대주던 공급망이 무너졌으니 맛깔나는 책을 갖다 두기 힘들다.
아날로그 세대는 이렇게 외치지 않을까. “이것은 또 하나의 분서다.”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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