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키 190㎝에 몸무게 65㎏인 한군은 어릴 적부터 모델을 꿈꿨다. 예쁜 옷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단다. 진즉부터 모델 학원에 다니고 싶었지만 동생이 올망졸망 넷이나 되다 보니 석 달에 200만원씩 하는 수업료가 부담이었다. 대신 유튜브로 패션쇼 영상을 찾아보며 워킹 연습을 반복했다. 그러다 지난해 봄,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을 본 현 소속사 ‘에스에프 모델스’ 윤범 대표와의 만남이 계기가 됐다. 속전속결. 이태원 길 한복판에서 워킹 테스트를 거친 뒤 바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서울패션위크 오디션까지는 불과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전문가에게서 속성 과외를 하루 받고, 나머지 일주일은 혼자 맹연습했다. 한군은 “백지 같은 상태라 오히려 더 스펀지처럼 모든 걸 빨아들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다행히 오디션 결과도 좋았다. 국내 모델이 그 키에 그 체중이면 근육은 전혀 없는 깡마른 체형이 보통인데, 한군의 몸은 신기하게도 볼륨이 살아있다는 말을 들었다. 특히 주황색 코트나 진주가 달린 셔츠처럼 화려하고 튀는 옷이 그의 얼굴색과 체형에선 더 살아났다.
한군은 이 모든 것을 기적 같은 행운이라고 했다. 지금껏 국내 모델계에선 흑인 모델이 설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전 세계적으로 SNS를 통해 힙합 등의 스트리트 패션이 주목받고, 해외 유명 브랜드 광고에서도 흑인 모델들의 노출이 빈번해지면서 국내 진입장벽 또한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된 것.
한군은 “백 스테이지에서도 제가 한국말 못하는 줄 알고 말을 안 거는 것 빼고는 혼혈이라서 크게 힘든 점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당찬 한마디를 덧붙였다. “제가 얼마나 중요한 선례인지 알아요. 혼혈 모델들이 점점 많아질 텐데, 좋은 롤 모델이 되고 싶어요.”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