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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5] 추석과 바이러스

바람아님 2013. 8. 21. 09:27

(출처-조선일보 2009.09.21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지난 5월 19일 나는 이 칼럼에서 전염병의 전파 메커니즘과 독성의 관계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병원균의 숙주 간 이동이 어려워지면 지나치게 독성이 강한 균들은 이미 감염시킨 숙주와 함께 사멸하고 다음 숙주로 옮겨가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약한 균들만 남아 그 질병에 대해서는 더 이상 사회 전체가 함께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된다. 그런데 지금 신종 인플루엔자의 경우에는 우리가 어쩌면 초기 차단에 실패한 건 아닐까 우려된다.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이번 추석에 대목을 기대하고 있는 이들이 그동안 경기침체로 고생하던 우리 상인들만은 아닌 듯싶다.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들도 두 손 모아 추석 대목을 기다리고 있다. 민족 대이동은 직접감염에 의해서만 다른 숙주로 옮겨갈 수 있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게는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그러지 않아도 신종 인플루엔자가 호시탐탐 대유행의 단계를 흘끔거리는 즈음에 민족 최대의 명절이 맞물려 보건복지가족부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까짓 바이러스 때문에 수천 년을 이어온 전통을 훼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문제만큼은 냉철하게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식들이야 물론 효성으로 어르신들을 찾아뵙지만 신종 인플루엔자에 가장 취약한 분들이 바로 그분들인 걸 어찌하랴? 우리가 오늘날 외지인들을 꺼리고 심지어는 차별하게 된 연유가 바로 전염성 질환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는 진화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금년 추석만큼은 도시에서 몰려오는 이들을 마냥 반갑게만 맞을 수 없는 시골 어른들의 마음도 헤아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신종 인플루엔자가 극성을 부리는 바람에 조류 인플루엔자 소식은 잘 들리지도 않는다. 그들이 제법 신종 인플루엔자로 고생하는 우리 사정을 헤아려 자제하고 있을 리 만무할 걸 생각하면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가져다 주는 대신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묻혀 돌아올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추석은 연휴기간이 짧아 서울~부산 소요시간이 무려 8시간 40분이나 될 것이라는 한국도로공사의 예측도 있고 한데, 거의 자학 수준의 귀성 전쟁에 일시적이나마 휴전 협정을 논의하는 건 정말 불손한 일일
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