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3.08.20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뎅기열(Dengue fever)은 흰줄이집트숲모기가 옮기는 열대지방의 바이러스성 풍토병이다. 뎅기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고열과 더불어 근육, 관절, 안구 등에 심한 통증이 수반되고 마치 홍역을 앓는 듯한 발진이 나타난다. 얼룩날개모기가 옮기고 매년 적어도 65만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말라리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뎅기열도 해마다 110개국에서 거의 50만명이 병원을 찾으며 그중 약 2만5000명이 사망하는 무서운 질병이다.
흰줄이집트숲모기가 최근 제주도에 안착한 것으로 밝혀졌다. 공교롭게 미국 플로리다 남부에서도 이 모기가 발견되었다. 미국은 예전에 대대적인 방역을 실시하여 이 모기를 박멸했는데 이번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제주대 의대 이근화 교수 연구진에 따르면 서귀포 지역에서 채집한 모기의 유전자 염기 배열을 분석해보니 베트남에 서식하는 모기의 배열과 일치한단다. 연구진은 공항이나 항구를 통해 들어온 흰줄이집트숲모기가 지구온난화 덕택에 제주도에서도 서식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에 유학하던 1982년 여름 내내 나는 하루걸러 작은 경비행기를 타고 곤충채집을 했다. 고도를 달리하며 커다란 포충망을 비행기 밖에 내걸어 장거리를 이동하는 곤충들을 채집하여 분류하는 연구였다. 그 결과 우리는 진디, 파리, 모기, 멸구 등 몸집이 작은 곤충들이 계절풍 제트기류를 타고 순식간에 엄청난 거리를 이동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뎅기 바이러스에 감염된 모기는 이미 대만까지 북상했다. 그들이 꼭 점잖게 비행기나 배를 타고 오는 게 아닐 수도 있다. 오래전부터 바람을 타고 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예전에는 와본들 살아남을 수 없었는데 이제는 기후변화 때문에 아열대화한 제주도에 버젓이 정착하게 된 것이다.
몇 년 전 나는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을 찾아가 기후변화에 대비한 열대성 질병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6개월 안에 조류독감을 때려잡을 야전사령부를 세운다면 지원하겠지만 10년 후에나 벌어질지 모르는 질병에 투자하기는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내보니 10년씩이나 걸릴 일이 아니었다. 뎅기 모기의 출현은 온갖 다른 열대성 질병도 이미 우리 문지방을 넘고 있음을 경고한다. 옛말에 '개미 나는 곳에 범 난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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