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09.09.02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
공식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것은 나치 독일의 전함들이 폴란드의 그단스크 항구를 공격한 1939년 9월 1일이지만, 그보다 이미 열흘 전부터 개전(開戰)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8월 23일 나치 정권의 외무부 장관인 리벤트로프는 히틀러의 전용기를 타고 모스크바로 날아가서 스탈린과 담판을 벌여 상호불가침 조약을 맺었다. 조약 내용은 양국 간 서로 침략하지 않고 또 한편이 제3국과 전쟁을 할 때 상대편은 중립을 지키겠다는 것이었지만, 여기에는 북동부 유럽의 영토 분할에 대한 비밀조약이 덧붙여져 있었다. 폴란드를 양국이 절반씩 차지하고, 핀란드·발트 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루마니아 북부 지방을 소련이 지배하게 된 것이 모두 이때 합의된 내용에 따른 것이다.
그렇지만 히틀러와 스탈린 모두 조약을 체결할 때부터 이미 배신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나치 독일은 서유럽을 침략하기 위해 일단 시간을 벌어두었다가 적절한 때 소련을 침공할 계획을 짜둔 상태였고, 소련은 그들 나름대로 독일이 서부전선에서 고전할 때 뒤에서 급습할 생각을 하고 비밀리에 전쟁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1941년 6월 22일, 미처 예상치 못했던 이른 시기에 나치 독일이 먼저 소련을 공격해 들어오자 소련은 초반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히틀러는 소련이 먼저 침공하려 하기 때문에 자기들이 전쟁을 벌인 것이라고 궁색한 변명을 했지만, 그 주장이 사실이라는 것을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소련이 그동안 줄곧 전쟁 준비를 해왔다는 것은 곧바로 드러났다. 시베리아로 이전시킨 군수물자 공장이 정상 가동되기 시작하자 갑자기 소련군의 화력이 엄청나게 증강되었다. 초반의 패전 상황을 수습한 후 공세로 돌아선 소련군은 엄청난 수의 탱크와 대포로 독일군을 궤멸시켰다.
악마 같은 두 세력 사이에 끼인 폴란드만 불쌍한 신세가 되었다. 유럽 각국 지도자들이 모여 제2차 세계대전 발발 70주년 기념 추모식을 할 때 폴란드의 카친스키 대통령은 나치 독일의 침공 이후 보름 뒤에 소련이 폴란드 동부를 침략한 것을 두고 "볼셰비키가 폴란드의 등에 칼을 꽂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나 당시 서방 국가들의 잘못된 대응만 비판하는 푸틴의 응답을 보면 러시아는 아직 과거사에 대해 진정한 사과를 할 의도는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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