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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1] 까치와 칠석

바람아님 2013. 8. 19. 09:25

(출처-조선일보 2009.08.28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내일은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 위의 오작교에서 만나 애틋한 사랑을 나눈다는 칠석이다. 견우성과 직녀성이 늘 들러붙어 사랑을 속삭이다가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는 바람에 그 후부터는 1년에 단 한 번밖에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는 얘기, 그리고 이들이 만나는 장소인 오작교는 까마귀(烏)와 까치(鵲)가 날개를 펴 만들어준 것이라는 얘기는 우리 모두 익히 잘 알고 있다.

칠석 설화는 중국에서 유래하여 우리나라와 일본 모두에서 예로부터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런데 일본 전설에는 오작교에 대한 언급이 없다. 지금 일본 규슈와 홋카이도 일부 지역에 살고 있는 까치는 임진왜란 때 일본 장수가 일부러 옮겨준 몇 마리의 후손들이다. 일본에도 까마귀는 오래전부터 있었으니 '오교(烏橋)'의 설화라도 있을 법한데 일본의 칠석 전설에는 새들에 대한 얘기가 아예 없다. 전설도 어느 정도 사실적 근거가 필요한 것이리라.

나는 서울대학교의 이상임 박사와 더불어 1996년부터 지금까지 벌써 13년째 까치에 관한 장기적인 생태·행동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까치는 영국에서 유라시아 대륙에 걸쳐 미국에 이르기까지 북반구 전역에 분포하고 있다. 그런데 까치의 날개는 짧고 둥근 모양을 지니고 있어 사실 장거리 이동에는 적합하지 않다. 웬만한 산맥이나 해협도 넘지 못한다. 제주도에 지금은 까치들이 번성하고 있지만, 그것도 1989년 한 스포츠 신문사가 창간 2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아시아나항공사의 후원을 얻어 방사한 것이다. 미국의 까치들도 거의 틀림없이 한때 베링해협이 육로로 연결되어 있을 당시 건너가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애당초 장거리 여행에 적합하지 않도록 진화한 까치가 어떻게 '세계적인' 새가 되었는지는 까치 연구의 핵심 주제 중 하나이다. 우리 연구진은 몇년 전 북반구 여러 지역에서 채집된 까치의 표본에서 DNA를 추출하여, 까치가 원래 영국에서 유래하여 동진에 동진을 거듭하여 미국으로 건너갔다는 주장과 달리,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시작하여 일부는 동진하여 미국에 이르고 일부는 서진하여 영국에 안주하게 된 것이라는 결과를 얻어 국제학술지에 발표했다. 하지만 생물학 연구가 아니라 설화의 다양함만 보더라도 우리나라가 까치의 종주국임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