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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36] 축구전쟁

바람아님 2013. 8. 19. 09:43

(출처-조선일보 2009.12.11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1970년 멕시코 월드컵의 북중미 예선 14조 A지역에서는 6개국 간 접전 끝에 온두라스엘살바도르가 최종전에 올랐다. 1969년 6월 7일, 엘살바도르 팀이 온두라스의 수도 테구시갈파에 왔을 때 선수단이 묵고 있는 호텔 밖에서 온두라스 응원단이 밤새 자동차 경적을 울리고 고함을 질러대서 한잠도 못 자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다음 날 경기에서 엘살바도르는 1 대 0으로 지고 말았다.

일주일 뒤, 이번에는 온두라스 팀이 당할 차례였다. 경기 전날 밤, 엘살바도르 응원단은 호텔 창문을 깨고 쥐를 던지는 식으로 난동을 부리며 온두라스 선수단을 괴롭혔고, 다음 날 온두라스는 3 대 0으로 졌다. 관중석에서는 양국 응원단이 충돌해서 2명이 죽고 많은 사람들이 부상당했다. 온두라스에서도 폭동이 일어나서 수십명의 엘살바도르인들이 살해당했다. 극도로 감정이 악화된 양국은 국교를 끊기에 이르렀다.

6월 27일에 중립 국가인 멕시코에서 최종전이 벌어졌을 때 분위기는 이미 전쟁상태나 다름없었다. 경기는 엘살바도르의 3 대 2 승리로 끝났지만, 사태는 이것으로 종료되지 않았다. 7월 14일에 엘살바도르가 폭격기와 탱크를 앞세워 온두라스를 침공함으로써 일명 '축구전쟁'이 시작되었다. 주변 국가들이 중재에 나서서 휴전을 맺기까지 사흘 동안 벌어진 전투에서 군인과 민간인 합쳐서 사망자만 약 3000명에 달했다.

사실 양국은 이미 수십년 동안 심각한 갈등관계에 있었다. 인구 과밀 문제로 고통받던 엘살바도르 사람들은 국토가 다섯배나 넓은 이웃 온두라스로 밀입국해서 농지를 차지했다. 1960년대가 되면 이런 불법 이주농이 30만명에 달한 상태였다. 온두라스 정부는 토지개혁을 하면서 엘살바도르 출신 이민자의 권리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그들의 토지를 빼앗아서 온두라스인들에게 재분배했다. 양국 신문들은 서로 상대방 국가가 잔혹 행위를 일삼고 있다고 맹렬히 비난해서 감정을 격화시켜 나갔다. 이런 갈등 상황에서 축구가 불을 지른 셈이다.

스포츠 경쟁이 하도 심하다 보니 자칫 이웃 국가들 사이에 감정을 상하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경기에서 이기고자 하는 열기가 아무리 뜨겁더라도 기본적으로 월드컵은 국제 간에 우의를 다지는 축제가 되어야 마땅하다. 축구는 축구일 따름이다.